오수영 산문집, 깨지기 쉬운 마음을 위해서
산문집을 읽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임신을 준비하던 2013년부터 내가 읽은 책은 건강 관련, 육아 서적, 그리고 최근 들어서 경제와 재테크 관련 서적이 전부이다.
코로나19로 집 콜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시간이 멈춘 듯 일상이 뒤틀어진 시기이지만,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리뷰어스클럽 서평단으로서 다양한 도서를 읽게 되어 한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란히 걷기. 40p
사랑은 나란히 걷는 것도, 마주 보는 것도,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은 우리가 어떤 속도와 방향일지라도, 혹은 함께 있거나 그렇지 않을지라도, 다만 실타래처럼 가늘지만 분명하게 이어져 있다면, 그것으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영원한 산책. 75p
언젠가부터는 엄마와 함께 나서는 오늘의 산책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엄마의 보폭에 맞춰 한없이 여리고 느리게 산책을 하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이 순간을 온몸에 새겨두려 발버둥을 친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분명 있지만 아직은, 아직은 당신을 보내드릴 수가 없다.
바깥은 축제. 96p
"연인 사이가 나중에 반드시 무언가로 변해야 한다는 집착이 관계를 망치게 되는 거야. 소중할수록 부담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는 거지. 오히려 무엇이 되거나 혹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질 때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곁에 남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의 인연인 거지."
질병의 고통과 싸우는 엄마, 그 엄마와의 시간을 붙들고만 싶고,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싶고 추억으로 만들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때의 소년은 지금쯤 어른이 되었을까. 100,101p
"아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나는 커서 아빠가 될 거야"
만개하는 말들. 135p
말은 과정이고 행동은 결과이다. 혹시나 결과만을 원하는 사람일지라도 과정이 따뜻하고 아름담다면 더욱 충만한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가끔씩 말로 인해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들이 찾아온다면, 말을 상대방에게 건네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처럼 세심한 마음으로, 상대방이 이 선물을 받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그렇게 단어를 고르고, 말투를 골라서, 정성껏 건넨다면, 우리의 말에서 향기로운 꽃이 만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심의 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다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병아리를 보고 놀라서 친구들과 같이 옥상으로 뛰어올라가보니, 거기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 두 아이가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병아리가 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 동심으로 인하여 병아리의 생명을 앗아가버린 행동....
동심은 순수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무지함으로 인하여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서서히 지워지는. 215p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일한다는 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나는 그 속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나를 지워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지워진 나는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영 지워져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어쩐지 더욱 속 비친 내 모습이 자꾸만 흐릿해지는 기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알지만,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들을 업신여겨서는 모든 게 무너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과 믿음이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한 치 앞에서도 볼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