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엑스포메이션

알몸 엑스포메이션
하라 켄야.무사시노 미술대학 히라 켄야 세미나 지음, 김장용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9월

제목에 알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눈길을 끈다. 그런데 거기에 붙어있는 엑스포메이션이란 단어가 낯설다. 책을 펴보니 가장 먼저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의 뜻에 대해 나온다.  
인포메이션 (information)의 상대어로 고안된 조어란다. 어떤 사물에 대해 설명하거나 알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모르는지에 대한것을 알게 하는" 것에 대한 소통방법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일상 속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쳐버린 것들에 대해 어떤 특별한 계기가 마련되어 그것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인데 참 신선한 주제인 것 같다.

하라 켄야는 그래픽디자이너이고 디자인센터 대표이고 미술학교 교수이다.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한다. 
디자인 책 답게 이 책에는 글 보다 사진과 그림 많다. 처음 나온 사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인 여자가 서있는 사진이다.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니고 조명이나 배경이 멋지게 있는 것도 아니고 몸매가 멋지지도 않다. 그냥 알몸의 여자 사진이다.  책 제목에 알몸이 들어가지만 이런 사진이 나올 줄 몰랐기 때문에 좀 놀랐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책을 넘기다 보면 당혹스러운 그림이 종종 나온다. 소녀 만화의 주인공들이 모두 옷을 벗고 있는 그림이라던가 일상생활을 하는 알몸의 여자 그림이 그렇다. 우리가 알몸을 보면 먼저 성적인 것을 떠올리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이고 당혹스러워 하는것 이리라. 목욕탕에 가서 사람들의 알몸을 봐도 성적인 것과 연관시키지 않기 때문에 부끄럽거나 당혹스럽지 않은 것과 반대되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처음 봤을때 당황스러웠던 그림들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봤을때는 그 정도가 덜해졌다. 
이 책에는 사람의 알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물에 팬티를 입혀 놓은 모습, 어떤 공산품들이 완성되기전의 모습, 여러가지 재질로 피부를 표현한 알몸의 아기 모습, 여러가지 무늬와 여러가지 색으로 표현한 사람의 피부색, 엉덩이 모양으로 만들어진 물체들등이 실려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모든 작품을 다 잘 본건지는 모르겠지만 신선하기는 했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물건들이 이렇게 보일수도 있구나, 일상적인 모습에서 옷만 벗겨도 이렇게 다른 감정으로 와닿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허수아비춤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로 작가의 말은 시작된다.
그만큼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현실이 가슴을 두드릴 정도로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라는 톨스토이의 말과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라는 정약용의 말로 작가의 말은 마무리된다.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쓰셨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강기준은 경쟁기업에서 대학 선배 박재우를 일광 그룹으로 스카우트 한다.  그리고 회장의 특별지시로 윤성훈의 지휘하에 문화개척센터라는 부서를 만든다. 문화개척센터는 비자금을 관리하고 그 비자금으로 주요인물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주요  인물은  중요 부서의 7급 공무원부터  기자,  검사, 대학 관계자까지 다양하다. 일광그룹이 자행하는 불법적인 일들도 일사천리로 허가가 나고, 그룹 이미지에 해를 끼치는 기사는 내보내지 않고, 거대한 비자금 조성과 재산권 불법 상속, 경영권 불법 승계에 대한 조사도 흐지부지 되게 하고, 기업들의 만행에 대해 말하는 교수는 단칼에 잘라버리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 댓가로 그들 셋은 일반 월급쟁이 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스톡옵션이라는 명목으로 받는다. 그리고 잘먹고 잘 산다.

얼마전 <삼성을 말한다>를 읽었다.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가 그냥 소설이니 허구일 뿐이겠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삼성을 말한다>의 저자가 실제로 했던 일들 그대로 소설속의 주인공이 하고 있으니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 할 수가 없었다. 

80억을 상속 받아 20억 세금 내고 60억으로 계열사 중에서 아직 상장 되지 않은 주식을 헐값에 사서 상장 시키고 950억을 만들고 이런식으로 재산과 주식을 증식해 자연스레 대기업을 물러 받는 회장의 아들 이야기도, 이런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게 감독하고 이런 일이 일어 났을때 자세히 파헤쳐 벌을 주어야 하는 검찰, 국세청, 공정위, 금융감독기관이 대기업의 돈을 먹고 묵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대기업 회장이 실형을 받아도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이유로 금방 풀려나온다는 이야기도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나도 책에 나오는 칼럼의 내용처럼  대기업의 위기가 우리나라의 위기고 우리 경제의 위기고 우리 가정의 위기이기 때문에 대기업에 순종하는 노예적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용은 무겁지만 우리말의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고 또한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재미와 의식의 깨어남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도박 눈

도박 눈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10년 9월

 

카파 노블스 출판사 창립 50주년을 기념해서 형재 주목받는 작가와 거장들의  <50>이라는 단어와 연관된 내용의 단편을 묶어놓은 책이다.

<시계관의  살인>으로 제45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아야쓰기 유키토, <월광게임>으로 데뷔해서 <하얀토끼가 도망간다>로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아리스가와 아리스, <무간 인형 신주쿠 상어4>로 제 11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오사와 아리마사, <점성술 살인 사건>으로 데뷔한 시마다 소지, <은하영웅전설>등의 인기 시리즈를 간행한 다나카 요시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술래의 발소리>로 유명한 미치오 슈스케, 말이 필요 없는 미미 여사 미야베  미유키, 제 7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대상을 수상한 모리무라 세이이치, <동기>로 제53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요코하마 히데오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일본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을 들어봤을 듯한 작가들이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이 한권에서 다 볼수 있다는건 정말 기쁜일이다. 그것도 <50>이라는 숫자와 관계된 단편들을...  단편 한편 한편을 읽을 때 마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50이란 숫자가 나올까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50번을 잘라 50개로 조각난 시체, 50번을 자르면 조각이 51개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 조각이 50개 밖에 없을까? 
결혼 50주년을 맞은 부부, 결혼 기념일 마다 눈이 온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눈으로 인해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깰 수가 없다. 50주년을 축하하는 부부와 이 살인 사건과의 관계는?
뒷골목의 전설같은 존재인 용의 부름을 받고 호텔 50층으로 가는 사나이. 과연 50층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날까?
IQ50의 역도 선수가 50파운드를 더 들기 위해 코치를 구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다. 과연 그는 어떻게 코치를 구해 영국의 대표가 되었을까?
가문의 50대째 내려오는 저주는?
ISO50의 의미는?
50개의 눈을 가진 도박눈의 정체는?

섬뜩하기도 하고 훈훈하기도 하고 로멘틱하기도 하다.
미스터리가 섬뜩하다고 하면 당연하겠지만 훈훈하기도하고 로멘틱하기도 한 미스터리가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해가 될것이다.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개성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뉴욕에서

뉴욕에서 - 문화 관찰자 이상은의 뉴욕 이야기
이상은 지음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0년 8월

이상은이 <담다디>로 데뷔했을때 예쁜척 하지 않는 소탈한 모습과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팬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폭발할 듯한 인기가 자기것이 아닌양 무심하게 가요계를 떠나 유학을 갔을때 무척이나 슬펐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때 당연히 반갑고 기뻤다. 

뉴욕은 20년전 그녀가 공부했던 도시이다. 그리고 작년에 음반을 작업했던 도시이다. 뉴욕에서 작업할 당시에 받은 영감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이 책을 냈다고 한다.

평소 이상은은 멋을 부리지 않고 다닌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의 이상은은 스타일리쉬하다. 뉴요커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실제 대부분의 뉴요커들은 명품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지 않는단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사는 사람은 극소수란다. 그리고 그런 화려한 삶에서 벗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소탈할 수가 없단다. 누구를 보더라도 웃고 친절하게 대해 준단다.
편집자와 스타일리스트는 뉴욕의 화려하고 럭셔리하며 ’핫’한 곳을 돌아다니며 스타일리쉬한 책을 만들고자 했고 이상은은 인디 문화가 숨쉬는 곳으로 여행하길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그 두곳을 적절히 섞어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뉴욕에 관한 책을 보면 뉴욕은 참 화려한 도시같았는데 이 책에서 본 뉴욕은 낡고 너저분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유명한 인디밴드들의 공연장, 유명한 재즈뮤지션의 공연을 언제나 볼수 있는 재즈카페, 현대미술의 흐름을 볼수 있는 미술관등 문화적으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꺼리들이 널려있다.  

이상은은 세계의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뉴욕을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뉴욕의 문화를 모른 채 짧은 인생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20대 또는 30대는 주저없이 모든것을 접고 뉴욕으로 떠라라고 한다.   

지금까지 <섹스 앤 더 시티>로만 보아오던 뉴욕은 내가 어울릴 수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여준 뉴욕은 내가 가도 전혀 기죽지 않을 것 같은 도시였다. 역시 이상은이 보여주는 뉴욕은 기대만큼 특별했다. 
언젠가 꼭 가볼수 있겠지?  

대책없이 해피엔딩

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얼마전 과학자 정재승씨와 인문학자 진중권씨가 함께 쓴 <크로스>를 읽었다. 같은 현상을 보는 두 사람의 다른 시선이 색달랐던 책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은 없는듯 했다.  
이 책은 초등학교때 부터 친구였던 두 소설가가 1년동안  <씨네21>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놓은 것이다. 아마도 1년동안 충분히 소통하면서 글을 썼을것 같다.
 

처음 표지를 넘겼을때 나오는 작가소개를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김중혁 작가가 김연수 작가에게 치사하게 혼자 작가가 됐다면서 자신을 배신했단다. 친하니까 이런 얘기도 쓸 수 있는것이고 또 읽는 사람이 웃게 되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해 글을 연재하자는 <씨네 21>의 제안에 덜꺽 수락해 놓고 이럴 경우를 대비해 영화에 해 문의할 친구를 구해놓았는데 그 친구도 같이 연재를 한다는 소식에 절망하는 김연수 작가, 친구의 글을 요약해서 원고를 채우기도 하는 김중혁 작가. 
서로를 혁 옵바, 연수 옵바, 잘생긴 것이 문학에 방해가 된다는 뻔뻔한 Y,  고향친구, 초등학교 동창, 번역가 김연수 선생님등으로 부르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렛미인>의 촬영지에 갔지만 영화를 기억못하는 김중혁 작가와 그곳으로 데려갔지만 영화를 보지 못한 유학생의 이야기,  번역가이면서 <No Woman No Cry> 를 ’여자가 없으면 울일이 없다.'  해석했는데 고향 친구가 ’그만, 그대여, 울지 말아요' 라고 해석하는게 아니겠냐며 얘기해줘서 알았다는 이야기, 또 거기에 번역가 친구로 부터 영어로 칭찬을 받았다며 좋아하는 이야기, 경상도 사람이라 '응원'을 '엉원'이라 발음한다는 이야기등 영화와 상관이 있든 없든 둘의 이런 주고받음이 정말 재미있었다.    

< 밤은 노래한다>의 김연수 작가와 <악기들의 도서관>의 김중혁작가가 이렇게 유쾌한 사람들이고 사람 냄새 나는 사람들인줄 몰랐다.  혼자 썼으면 아마도 이렇게 허물없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때 부터 친구고 함께 얘기도 많이하는 친구와 함께 쓰고 또 친구가 읽을 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기 때문에 가식이나 잘난척 하는 글은 쓸 수가 없었을 것이리라. 영화 이야기보다는 둘의 개인사가 더 재미있었던 책이었다. 김연수 작가와 김중혁 작가의 팬이거나 이들의 소설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