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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로 작가의 말은 시작된다.
그만큼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현실이 가슴을 두드릴 정도로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라는 톨스토이의 말과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라는 정약용의 말로 작가의 말은 마무리된다.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쓰셨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강기준은 경쟁기업에서 대학 선배 박재우를 일광 그룹으로 스카우트 한다. 그리고 회장의 특별지시로 윤성훈의 지휘하에 문화개척센터라는 부서를 만든다. 문화개척센터는 비자금을 관리하고 그 비자금으로 주요인물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주요 인물은 중요 부서의 7급 공무원부터 기자, 검사, 대학 관계자까지 다양하다. 일광그룹이 자행하는 불법적인 일들도 일사천리로 허가가 나고, 그룹 이미지에 해를 끼치는 기사는 내보내지 않고, 거대한 비자금 조성과 재산권 불법 상속, 경영권 불법 승계에 대한 조사도 흐지부지 되게 하고, 기업들의 만행에 대해 말하는 교수는 단칼에 잘라버리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 댓가로 그들 셋은 일반 월급쟁이 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스톡옵션이라는 명목으로 받는다. 그리고 잘먹고 잘 산다.
얼마전 <삼성을 말한다>를 읽었다.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가 그냥 소설이니 허구일 뿐이겠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삼성을 말한다>의 저자가 실제로 했던 일들 그대로 소설속의 주인공이 하고 있으니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 할 수가 없었다.
80억을 상속 받아 20억 세금 내고 60억으로 계열사 중에서 아직 상장 되지 않은 주식을 헐값에 사서 상장 시키고 950억을 만들고 이런식으로 재산과 주식을 증식해 자연스레 대기업을 물러 받는 회장의 아들 이야기도, 이런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게 감독하고 이런 일이 일어 났을때 자세히 파헤쳐 벌을 주어야 하는 검찰, 국세청, 공정위, 금융감독기관이 대기업의 돈을 먹고 묵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대기업 회장이 실형을 받아도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이유로 금방 풀려나온다는 이야기도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나도 책에 나오는 칼럼의 내용처럼 대기업의 위기가 우리나라의 위기고 우리 경제의 위기고 우리 가정의 위기이기 때문에 대기업에 순종하는 노예적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용은 무겁지만 우리말의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고 또한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재미와 의식의 깨어남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