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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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봤을까? 암튼 일본에서 치매환자분들이 서빙을 하는 음식점이 있다더라는 것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러고선 흘려버렸는데 지난번에 KBS에서 이런 비슷한 것을 송은이 씨가 참여해서 한다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겨 챙겨보기 전에 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책을 보기 전에는 이 음식점이 계속 영업을 하는 매장인 줄 알았는데 2일 동안만 열었던 이벤트 개념의 매장이었어서 좀 아쉬웠다. 책을 읽기 전에는 과연 어떻게 치매환자분들만으로 서빙이 가능할까? 이게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가지고 책을 집어 들었던 거라 실망감이 없지 않았다.


책은 잔잔했다. 하지만 그 잔잔함이 내겐 큰 파동으로 느껴졌다. 치매라고 하면 가장 무서운 질병, 가족들이 간병을 하다가도 가족들까지도 병들어가는 치유 불가능한 질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도 중증은 아니지만 치매 증상이 있어서 나를 알아보시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일깨워줬다. 일단 어떤 사람에게 치매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전까지 그 사람을 수식해줬던 여러 가지 수식어들은 전부 사라지고 이름보다도 더 앞에 치매라는 떼어낼 수도 없는 낙인이 찍힌다. 하지만 그 사람도 사람이다. 치매보다 사람이 앞설 순 없다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그동안 치매를 단순히 무서워하기만 하고 알아보려고도 안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작년에 보고 못 뵌 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p.4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도쿄에 있는 불과 열두 석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2017년 6월 단 이틀간만 열린, 작디작은 이벤트였다.

p.28
'일본의 이 프로젝트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주변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노력이 있다면, 치매 환자도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치매 환자를 과소평가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다.
치매 환자를 대할 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그들도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노르웨이 공중보건협회 사무국장 Lisbet Rugtvedt씨

p.132
읽는다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려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보이고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p.140
오픈 전날 아침, 모두가 다짐한 것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도, 손님도, 우리도 '하길 잘했다'라고 웃으며 돌아갈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자고.

p.150
와다 씨는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유지하게 해 주는' 간병을 목표로 꾸준히 싸워왔다고 말한다.
"간병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살아가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필요한 곳에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살아가고, 더 이상 그 힘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게 되면 치매가 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요."

p.152
인간이 왜 멋진 존재인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간이, 자신의 뇌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멋진 것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그것을 지켜주는 것,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p.153
치매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p.155
와다 씨는 치매를 벌레가 달라붙어 있는 것에 비유한다. 사람에게 치매란 벌레가 달려있는 것일 뿐,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은 변함이 없다. 거기에서 시작하라고.

p.169
'신중하자'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거기서 안주해 버리면 사고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서, 신중함을 넘어 저 건너편 세상으로 가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p.182
'좋은 일 하는 건데 약간의 빈틈은 용서되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안 된다. 그런 응석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타협이 생기고 질 떨어지는 요리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194
실수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함께 즐긴다는, 조금씩의 '관용'을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분명히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실수와 착오라는 것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조금만 대화를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 아닐까.

p.200
지금껏 틀린다는 행위 또는 치매라는 병은 사회적으로 볼 때 '비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비용'으로 여기던 것이 돌변하여 어마어마한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

p.207
나는 와다 씨의 시설에서 '햄버그스테이크와 만두 이야기'라는 원작을 우연히 경험했고,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작품'을 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p.216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 없고, 잊어버리고 싶어서 잊어버리는 사람 없다.
바꾸어 말해, 적절한 도움과 지원이 있다면 치매를 앓더라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 손님들도 기뻐할 만한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본다.

p.230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두 가지 룰
'최고의 질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
'일부러 실수를 조장하지 말 것.'

읽고 나서 바로 든 느낌은 별 5개 만점에 4개였는데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보니 별 반 개에서 하나는 더 줘도 될 듯한 느낌이 든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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