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으로서 상현은 결점을 많이 갖고 있었다. 세상에 결점이 많지 않은 남편이란 없을 것이다. 남편이 되는 순간 여자는 그에게서 수많은 결점을 발견한다. 자기 아내가 되는 순간 남자가 여자에게서 수많은 결점을 보게 되듯이, 그것은 결혼을 함으로써 역할분담을 하게 된 동업자들 사이의 이기심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상현이 남편으로서 결점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랑을 얻기 위해 한숨짓고, 얻은 다음에는 믿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결국에는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스스로 피폐해지는 과민한 사랑. 어쩌면 그것은 나의 기질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의존적이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사랑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에게는 그런 사랑을 원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
나는 사랑의 소모를 두려워했다. 마치 광합성으로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 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사랑을 원했다.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가기를 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고 싶지는 않았다.
현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상현도 받아들일 수 있다. 내 안에서 사랑을 만들 줄 안다면 상대가 굳이 운명적 대상일 필요는 없다. 인간이란 결코 제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 대신 적응할수는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마지막 춤 상대가 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사랑이 되고싶어한다. 그러나 마지막이 언제 오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악이 언제 끊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대와의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추는 방법이다. 마지막 춤을 추자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답하면된다.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고.
그의 말이 맞다. 춤 상대가 누구든 무슨 상관인가. 춤을 즐기면 그만이다. 모든 게 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춤이 아닌 것은 없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춤도 없다. 단지 춤뿐이다. 구석에서는 계속 딸꾹질 소리가 들려온다. 노래도 계속된다. 남자는 눈길을 던지고 그리고 차는 밤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나는 취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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