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농부
변우경 지음 / 토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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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울 살이 30년 인생살이 끝에 귀향해 농사가 된 10년차 농부이다. 말그대로 ‘어쩌다 농부’이다. 농한기의 게으름이 좋고 천천이 지나갔으면 싶지만 봄에 뭘 심어야하나 고민하고, 이웃들보다 일의 속도는 늘 밀리기 마련이고 서툴지만

잡초를 뽑고 씨를 뿌리고 추수를 기다린다.

“심는 일은 언제나 오늘 해야 할 일이고 거두는 일은 아예 기대 밖의 일이더군. 내일은 서리가 내릴지도 모르고 추수 전날 우박이 내릴 수도 있지. 하늘이 반 짓는 농사, 농부는 그저 오늘 할 일을 오늘 하고 삽을 씻고 돌아가는 저녁에 막걸리 한 잔 마시면 그걸로 좋은거지.”

고추씨를 사고

거름을 내고 밭을 갈고 두둑을 짓고 비닐을 씌워 옥수수밭을 장만하고

사과를 팔고

꽃을 자르고

호두나무를 심고

고추를 심고

풀을 베고

감자를 캐고

단호박을 심고

참깨도 심는다

해가 뜨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는 삶. 그 모든 순간순간이 생명스럽다. 흔들리는 서울의 삶을 사느니 발 디딘 땅 위에서의 삶을 택하겠노라며 귀향한 삶에 걸맞게 하루의 모든 순간을 땅의 생명과 맞닿으며 살아낸다.

봄은 ‘빚쟁이’처럼 왔고 가을은 ‘툭’ 왔다고 하는 이 농부의 문장들은 에세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다.

계절따라 변하는 생명의 소리만큼이나 농부 마음의 소리도 변한다. 기뻤다가 예뻤다가 슬펐다가 힘들었다가 더웠다가 추웠다가 하는 그 마음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지만 서울 생활의 삶보다 비옥지게 느껴지는건 작가의 이 한마디 때문이겠지

“서울은 사는 게 고생이지만 여기는 농사만 고생이잖니껴.”

오늘을 희생해 내일의 연료가 되던 서울생활보다야 오늘 행복한 삶을 택한 작가의 삶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져서 부러웠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농부의 삶. 그만큼 자연스러운게 어디있을라고.

“인생 최고의 즐거움은 부귀영달에 있지 않고 볶은 콩을 씹으며 역사의 영웅호걸을 야단치는 것이지. 맑은 날은 밭 갈고 비오는 날은 책 읽으며.”

책을 읽는 동안 사계절의 온도차와 풍경이 눈앞에 스치는 듯 다채롭다. 어디선가 새벽의 찬공기가 밀려오는 듯하고 사과꽃의 향기가 지천에 풍기는 듯하다. 냄새는 고약하지만 사과의 사과다운 맛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거름의 냄새까지.

책 한권으로 느껴볼 수 있는 농부라이프였다.

내 두 다리는 이곳 서울에서 생명력있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 자리에서 지어내야 하는 나의 농사는 무엇일런지. 나도 작가님처럼 서울생활을 내려놓고 귀향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서울살이에서 타협하며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니. 지금 여기에서 내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내는 일을 노력해야겠다. 하늘이 주는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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