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들은 배고프지 말 것
이상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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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나는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연속극도 안보고 뉴스에도 관심이 없다.
나이 들어 할 일이 없어지면 외딴 마을 외딴집으로 이사를 해서 구시렁구시렁 혼자 지낼 것이다.
무짠지 담근 항아리를 땅속에 묻어놓고
그거나 한 개 두 개 썰어 밥반찬 해 먹으면서.
집 앞마당에 질경이를 뜯어 나물로 무쳐 먹으면서.
뒷동산에 할미꽃이 피었는지.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어나는지 기다리면서.
봄아지랑에 흔들흔들 흔들리는 저어기 아래 먼 마을에 눈을 주면서.
비 내리는 밤이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쪼로록쪼로록 빗소리나 헤아리면서.
45P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맘에드는 문장이다. 나도 이렇게 살고싶은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문장마다 장면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쪼로록쪼로록 빗소리나 헤아리면서 부분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시인이다 동화작가인 이상교님의 짧은 글과 그림이 담겨있는 책이다.한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시를 읽는듯한 에세이들인데 각 페이지들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어느페이지에선 금세 코끝이 찡해져 다음페이지를 넘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로 '엄마'와 '고양이'에 대한 문장들 앞에서 그랬다. 

<이유>
더 살고 싶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보란 듯이 해외여행을 꿈rN구는 것이 아니며,
맛있는 음식을 탐해서도 아니다.
자식 덕을 보자는 것이 아니요,
늦은 연애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눈을 쏘는 듯 눈부신 햇살의 아침과,
새파란 하늘 한 귀퉁이 깨져 내려 피어난 듯한
달개비꽃이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다.
먼 산의 능선을 지운 비안개 같은 것이 보고 싶어서다.
귀청 찢어지게 우짖는 직박구리 소리를 하루라도 더 듣고 싶어서다.
136P

짧은 글에서 그 어떤 글도 주지 못한 위로가 들어온다. 글 곳곳에서 조용한 공간과 자연, 작은 존재들이 작가의 눈에 띈다. 꽃, 새, 물고기, 고양이, 볕 등등이다. 
동화작가라 그런가 문장들마다 맑게 느껴진다. 시집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것이 시라면 '시'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속의 삽화도 직접 그리셨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린것마냥 조금은 못생긴 그림들인데 글을 읽으면서 보니 한껏 풍성하게 느껴진다. 색색별 예쁜 색깔의 그림들이 곁들여져 정말 동화와 동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작가가 보는 세상은 참으로 평온하고 작은 존재들도 평화로운 세계였다.

제목은 고양이지만 다 읽고 나니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산처럼 커져버린 책. 내일은 엄마한테 연락을 해야겠다라고 다짐하고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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