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런 곳이 있다. 겨우 반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빨리 떠나고 싶은 반면 가능하다면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다. <하루하루 교토>의 주아현 작가에게는 교토가 그런 곳이었다. 그녀의 한 달 교토 생활기를 읽으며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들을 떠올려봤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세계 곳곳에서 한 달씩 살아보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더 많은 도시를 더 치열하게 다녔던 사람들의 여행기가 부러웠지만 요즘에는 일정을 빠르게 클리어하는 여행이 아니라 도시 그곳만의 소리와 냄새, 풍경을 느긋하게 즐기는 느린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분명 나는 유명한 어딘가를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생각나는 건 우연히 들어간 좁은 뒷골목에 늘어진 장미 넝쿨,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맛집을 찾지 못해 어쩌다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저녁과 같은 것들이다. 추억은 우연히 더해지면 더 아련해진다. 그런 우연은 짧고 종종거리는 여행보다 <하루하루 교토>처럼 한 달 정도 느긋하게 그곳의 구석구석을 즐겨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책 제목의 '하루'는 일본어로 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하루하루 교토>는 벚꽃이 아름다운 4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동안 교토에서 지낸 흔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루하루 교토>에는 일상의 사진과 소박한 글, 교토의 아기자기한 카페, 자전거를 타며 느껴보는 교토의 봄바람이 가득하다. 만약에 교토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아닌 교토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숨은 카페와 장소를 알고 싶다면 <하루하루 교토>가 만족할만한 여행 정보를 알려줄 것이다.


나는 오늘의 정식을 주문하고 글을 쓰며 조용히 기다렸다.

<하루하루 교토>의 글은 그녀의 문장 한 구절처럼 조용히, 차분하게 흘러간다.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풋풋함이 글 속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 사랑스러웠다. 담백한 사진과 화려하지 않은 그녀의 글은 마치 일본 작은 식당의 정식처럼 소박하지만 맛있고, 화려하진 않지만 매력적이었다.

일본 여행과 커피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하루하루 교토>의 이야기는 그녀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위시리스트처럼 나만의 위시리스트로 추가되었다. 그녀가 소개해 준 교토의 모든 카페를 가볼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으며 교토에 간다면 꼭 가보고 싶은 몇 곳을 담아두었다. 이왕이면 작은 자전거를 타고 벚꽃이 흐드러지는 4월이면 더욱 좋겠지.


그냥 첫인상부터 너무 좋아서 '여기다!' 싶은 느낌이 드는 곳. 흔히들 자신이 살면서 만난 가장 좋은 것들을 인생 옷, 인생 음식 등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이곳은 나에게 인생 카페였다. 이 공간이 유별나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이곳에 온 지 고작 5분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다 좋게만 느껴졌다. "좋다."라는 말을 혼자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교토>를 읽으며 나 역시도 "좋다."라는 말을 여러 번 내뱉었다. 사진과 길지 않은 글이라 책은 앉은 자리에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카페 하나하나를 다시 찾아 읽었다. "좋았다." 햇빛 드는 나무 탁자도 좋았고, 찰랑거리게 담긴 커피도 좋았다. 텃밭에서 금방 따와서 만들었을 것 같은 싱싱한 샐러드가 소복히 담긴 정식도 좋았다. 사진을 보고, 글을 따라 읽다 보면 내가 그녀가 된 듯, 4월에 교토 그 카페에 있는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여행에 정답은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느끼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이다. <하루하루 교토>는 그런 의미에서 참 행복한 책이다. 느림이 가득한 여행, 그래서 더 즐거운 <하루하루 교토>는 교토에 가본 사람뿐만 아니라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교토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카페 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다시 궁금해졌다. 다음 페이지에는 그녀가 어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갈까? 벚꽃이 피면 그녀가 알려준 뮤직 리스트를 들으며 카페에 앉아, 다시 <하루하루 교토>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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