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4
The School Of Life 지음, 구미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쓴 리뷰는 무척 개인적이다. 작품을 분석하거나 평가를 내릴 능력도 없을뿐더러 책이라는 게 지독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의 같은 구절을 읽어도 각자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게 바로 책이다. 내가 읽고 쓴 리뷰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리뷰를 쓰면서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분석보다는 감정에 따라 글을 쓴다. 잠시 분석적인 리뷰를 써보고 싶어 메모를 하고 형식에 따라 적어봤지만 역시나 글을 쓰다 보면 온통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 투성이었다. 이런 리뷰 성향에 충실해 버리면 이번 와이즈베리에서 나온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 이야기가 아닌 책을 읽으며 들었던 나의 미숙했던 관계들에 관해 적어야 한다. 그래서 <관계> 리뷰를 적는 지금, 나는 아주 신중하게 글을 쓴다. 책을 읽던 중에 느꼈던 울컥함과 옛 관계들에 대한 후회가 일기처럼 마구 쓰여질까 두렵다.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 학교에서 출간된 책 중에 남녀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관계>는 연인 또는 부부관계에 미숙한 수많은 성숙하지 못한 감정을 가진 몸만 어른인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읽으며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왜 그런 결과가 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충분히 어른이고, 충분히 노련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관계>를 읽으며 깨달았다. 오만이었구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인생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남녀관계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라는 두 가지 접근법으로 나눠서 비교 설명한다. <관계>를 읽으면 그동안 우리가 '낭만주의'라는 듣기 좋은 이름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관계>에서 말하는 고전주의적 접근법에 따르면 '누구나 알고 보면 깊숙한 문제가 있고 함께 살기가 힘든 사람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직 잘 모르는 사람뿐이다.'라고 '사랑은 그저 좇아가야 할 충동이 아니라 배워야 할 기술'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러브스토리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태반은 러브스토리의 '시작'이다. 사랑에서 정말로 투지 넘치는 도전은 어떻게 오랫동안 사랑을 지속하느냐와 관계가 있다.'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관계> 속에는 지금 관계에 문제가 있는 연인, 부부들에게 현명한 답을 들려줄 이야기가 가득했다. <관계>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누구든, 현재 혼자인 누구든, 최근에 헤어진 누구든 간에 각자에게 필요한 해답을 마법처럼 찾아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지만 내가 읽고 느낀 것은 <관계> 속의 모든 이야기는 남녀라는 틀에서 벗어나 인간관계 속에서도 필요한 것들이었다.

<관계>에는 많은 질문이 들어있다. '우리는 왜 좋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가까운 사람에게 더 화를 낼까?' 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외교'를 하라, '있는 모습 그대로'사랑하기라는 환상'등 관계 속에 있는 사람부터 관계가 서툰 사람들까지 관계를 하면서 궁금했지만 누구 하나 시원한 답을 들려주지 못한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나는 관계에 서툰 인간이다. 학창시절부터 직장을 다니며, 연애를 하면서도 늘 관계가 어렵고 성숙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놓치기 아까운, 좋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결국 관계에 서툰 내 잘못 때문에 예전에 알던 추억속의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마음에는 그럼 올바름이 낯설고 과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을 태우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와 함께하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서 좌절감을 느끼는 편이 편하고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과 달리 두 접근법에 대한 설명은 놀라웠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랑과 연인 관계에 대해 내뱉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낭만주의'라는 허울만 좋은 재앙에 현혹된 것이었다. <관계>에서는 과감히 말한다. 낭만주의는 사랑을 망치는 재앙이다. 나 역시도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낭만주의의 틀 안에서만 맴돌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제짝이 있다는 주장, 진정한 사랑은 나를 만족시킬 능력을 가진 사람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본능이라는 낭만주의에 우리는 너무 심취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관계>를 읽고 낭만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현재의 관계에서 조금 더 현명한 방향으로 몇 발자국 앞서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책 속에는 스스로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 몇 가지 문장 완성해 보기가 제시되어 있는데 책을 읽어도 나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면 <관계>가 짧게 담아둔 문장의 뒷부분을 적어봄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관계> 속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백년해로라는 신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낭만주의는 혼자이면서 정상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낭만주의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대부분 역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있는 사람을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취급한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듯이 결혼이 맞지 않거나 혼자가 좋은 사람도 있다. 결혼에 상관없이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부분 역시 남녀관계를 기반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벗어나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책이 들려주는 연인, 부부관계에 대한 조언들 중에는 이미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알고 있는 남녀관계인데도 항상 관계가 서툴러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거나 늘 삐걱댄다면 그것 또한 관계의 오만이 아닐까. <관계>는 허울좋은 이론은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삶의 지혜와 통찰을 들려준다는 인생 학교답게 우리 삶을 조금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알려준다.

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그 사람을 좋아했을까? 왜 그 남자는 처음과 달리 남자답지 못하고 아이 같을까? 왜 그 사람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을까? 왜 나는 인연을 만나지 못할까? 등 남녀관계에 붙는 모든 '왜'라는 질문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계>를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이미 깊숙이 자리 잡은 '낭만주의'에서 당장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른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것에서 벗어난다면 더 자유롭고 더 마음껏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삶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랑'을 조금 더 사랑하기 위해 <관계>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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