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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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다른 곳은 못 가더라도 꼭 4곳만은 가보자고 정해놓은 곳이 있다. 중국 서안, 이집트, 이탈리아 로마 그리고 페루의 마추픽추가 그곳이다. 2곳은 다녀왔지만 아직 2곳이 남았다. 제일 가까운 서안과 제일 먼 마추픽추. 왠지 서안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인  것 같아 진시황릉을 보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추픽추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서 남미 여행자는 내게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 넓은 남미에 마추픽추라는 곳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남미에 다녀왔다는 사람을 만나면 항상 같은 질문만 해댄다. '마추픽추 보셨어요?'


내가 원했던 그것을 보기 위해 갔지만 정작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많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보고 싶었지만 정작 이집트에서 가장 황홀했던 장면은 사막에서 보는 별과 해였다. 로마의 옛길과 건물들을 보고 싶었는데 다녀와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드는 바티칸의 예술작품들이다. 나는 남미를 잘 모른다. 막연히 마추픽추가 있는 나라라고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아마 언젠가 남미에 가게 된다면 늘 그렇듯 이미 유명한 관광지인 그곳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남미의 전혀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겨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남미에 가보지 않았고 언제 갈지 기약도 없지만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를 통해 이미 페루의 마추픽추가 아닌 여러 모습의 남미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6개월간 페루를 시작으로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에콰도르, 쿠바를 거쳐 콜롬비아까지 다녀온 그녀의 이야기는 마구 써 내려간 일기 같기도 하고, 남미의 매력을 마음껏 느껴보라고 말하는 감성 에세이 같기도 했다. 짧은 호흡으로 툭툭 끊어치듯 이야기하는 작가의 글이 좋았다. 한국의 직장인에서 여행자로 변해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하루의 마무리로 술을 마셔대고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며, 남미에서 사랑에 빠지는 특별하면서도 소소한 일상들을 솔직하게 들려줘서 좋았다.


여행 에세이를 좋아한다. 다녀오지 못한 곳을 그리워하고, 같은 곳을 봤지만 전혀 다른 시각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글을 부러워하며 읽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 에세이에는 마치 인생에 달관한 철학자와 같은 구절이 곳곳에 숨어있고 그것을 찾아내며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일상이 전쟁터지만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이곳에서는 느끼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은 낯섬이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 보는 상황과 문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보다 빠르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여행 에세이에는 무심한 듯 말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문장들이 많다.

밤공기에 볼이 싸늘해 뜨거운 입김을 차가운 대기로 내보냈다. 펼쳐질 날에 대한 설렘, 아직도 긴 시간이 남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중학교 때 도서관을 나오면서 본 밤하늘도 생각났다. 그때도 별이 많아 설레었다. 긴 시간이 남았다는 안도감도, 그제야 시간이란 존재에 가슴이 메었다.

세상엔 안 해서 후회되는 게 더 많다.

곳곳에 숨어있는 많은 글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바라본 노을에 대해 적은 부분이다.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은 마지막일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길 바랐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적이 지금까지 두 번 있었지만 나는 그 두 번 모두 혼자 즐겼다. 그녀의 마음이 어떤 건지 공감이 되면서 마추픽추에 가게 된다면 우유니 사막 투어도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광지 같은 느낌의 사진과 일상인듯한 사진이 잘 섞여있는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는 사진의 느낌처럼 작가의 글에서도 역시 묘하게 여러 가지 느낌이 난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처럼 그동안 몰랐던 남미, 익숙하지 않았던 낯선 나라의 여러 지역들이 빠르게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작가의 말처럼 여행을 다녀온다고 인생이 갑자기 바뀌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여행이든 끝이 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예전과 같은 하루하루가 시작된다. 누군가 물었다. 여행을 갔다 온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여행을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10cm의 원 안에 살면 세상이 10cm인 줄 안다. 비록 10cm의 원 안에서 살고 죽어야 하지만, 그 원 밖의 세상을 알고 싶어 우리는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보지 못한 것을 모르는 채 사는 것과 본 후의 삶은 분명 다를 것이다. 1밀리미터라도 다를 거라는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앞으로도 불완전하게 살겠지만 여행을 통해 또는 다른 여러 경험을 통해 스스로 완전해지기를 노력하며 사는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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