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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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4일에 <파이 이야기>를 구입했다. 그리고 2017년 10월에 일러스트가 더해진 개정판으로 다시 <파이 이야기>를 만났다. 12년 만에 다시 읽은 <파이 이야기>는 물론 중간에 영화로도 접하긴 했지만, 2005년에 읽었던 나의 오래된 기억과 꽤 많은 부분이 달랐다. 기억 속의 <파이 이야기>는 영화처럼 환상 같은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였다. 그래서 영화에서 아름답게 표현한 그래픽들을 보며 감동했었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파이 이야기>를 읽으며 무척 당황했다. 2005년에 난 어떤 이야기를 읽었던 걸까. 이토록 치열하고 종교적이며 심오한 소년의 독백과 생존이 왜 나에겐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기억된 것일까.

책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부분 중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들이 꽤 있었는데 이번에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알게 되었다.  <파이 이야기>가 왜 그렇게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설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지 말이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 본 책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파이 이야기> 역시 내게 그런 책이 되었다. 단지 재미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책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의 변화에서 오는 감동이었다. 그냥 볼만한 소설이었던 <파이 이야기>는 내게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 삶과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 되었다.

 

 

2017년에 개정판으로 나온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는 '일러스트레이트 파이 이야기'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한 크로아티아의 일러스트 작가인 토미슬라프의 매력적인 일러스트 40여 점이 컬러로 수록되어 있다. 각각이 한편의 작품이었다. 파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도와 바다, 그리고 리처드 파커는 <파이 이야기>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고, 이미 책이나 영화로 접해본 이들은 보고 상상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해낸 그의 실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내 기억 속의 <파이 이야기>는 이 장면부터 시작이었다. 동물원을 처분하고 캐나다로 떠나는 파이. 인도에서 살았던 파이에 관한 부분은 '인도에서 살았다'라는 한 문장으로만 남아있었는데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를 읽으며 인도에 살면서 파이가 느꼈던 종교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꽤 많은 부분이 설명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조난을 견디며 그가 했던 생각들과 삶에 대한 의지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는 파이의 시선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와 파이의 이야기를 듣는 작가의 시각으로 나눠 구성되어 있다. 227일간 벵골 호랑이와 태평양 한가운데서 표류한 인도 소년, 파이의 이야기는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어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왠지 어디선가 누군가가 겪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다시 읽어 본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기독교와 이슬람, 힌두교를 대하는 파이의 자세와 그런 파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다음의 문장이었다.

아버지는 매표소 바로 뒤 벽에 선홍색 글씨로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건 뭘까요?'라고 적고, 작은 커튼이 있는 곳으로 화살표를 해 놓았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답을 보느라 커튼을 걷는 바람에, 정기적으로 커튼을 바꿔야 했다. 커튼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난 캐나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랑하는 가족과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파이는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벵골 호랑이 1마리와 작은 배에 남게 된다. 바다에 빠지든, 굶어 죽든 그전에 동물에게 물려 죽든 사방에서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파이는 결국 살아남는다. 아마 파이였기 때문에, 인간은 혼자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존재,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그는 살았다. 위로받으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말아야 할 존재. 음식과 물을 나누며 돌봐야만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 모순된 동료인 리처드 파커는 사람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의 집합체가 아닐까.

파이가 일본인들에게 이야기했던 끔찍한 이야기를 믿어도, 위험하지만 환상동화 같은 파이의 이야기를 믿어도 좋다. 어쨌든 파이는 살아남았고 그는 캐나다에서 자신만의 또 다른 <파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나가고 있다. 지독한 227일간의 표류 속에서 파이는 신을 잊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파이 이야기>를 덮으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태평양을 떠도는 작은 배 안일까, 새로운 땅에 도착해 도전을 시작했을까. 만약에 여전히 구조되지 않은 배 안이라면 어떻게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견뎌야 할까. <파이 이야기>는 문제와 답을 동시에 던져줬다. 여전히 지독히 헤매고 있는 당신에게 매혹적인 일러스트가 함께 하는 개정판인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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