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 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 대한민국 스토리DNA 15
김동인 외 지음 / 새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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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단편소설을 읽었다. 작년 한창 필사에 빠져 있을 때 읽었던 '무진기행'을 제외하고 나머지 단편 소설들은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 읽어보는게 아닐까. 내게 1970년 이전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근대 단편소설은 국어 시험에 나오는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밑줄을 긋고 문맥의 의미를 따라가기 급급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한국 단편소설은 고리타분하고 읽기에 힘들며, 펜을 들고 집중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장르가 되었다. 당연히 찾아서 읽어보지 않았다.


<무진기행>을 통해 다시 읽어 본 한국 단편소설들은 내가 알던 그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국어를 꽤 좋아해서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건가? 나는 어떤 소설을 읽고 시험을 쳤던 걸까. 아마 학창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 꽤 오랜만에 읽어 본 한국 근대의 단편소설들은 너무 재미있었다. 분명 교과서와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한국단편소설집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투리와 낯선 용어들, 감정 투성이였는데 새움에서 출판된 <무진기행>을 통해 다시 접한 많은 단편소설들은 가슴 아프고 슬펐다.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을 만나보는 대한민국 스토리 DNA 시리즈의 15번째로 출간된 <무진기행>은 한국 대표 문학상의 시작점이 된 작가 10인의 작품들을 엮은 책이다. 작가별로 1~2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학창시절에 읽어본 책도 있지만 이번 <무진기행>을 통해 처음 만난 작가와 이야기도 있었다. 한국 단편소설의 깊은 맛과 의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은데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진기행>에 수록된 한국문학상 10인의 작품들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읽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좋은 이야기는 시대에 상관없다는 말도 있지만 지금과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고뇌가 그때의 감성으로 담겨있는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읽힐 수는 없다. 다시 읽어봐도 애매모호한 이야기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의미를 일번, 이번 번호를 매겨가며 줄쳐 읽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10명의 작가들 중 누구를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학창시절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가의 작품부터 보며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고 <무진기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작품부터 읽어도 좋다.


10명의 작가들의 작품 모두 재미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 김동인의 소설들이 가장 좋았다. 특히 '광염 소나타'는 읽은 듯, 처음인 듯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점점 변해가는 천재 광인의 모습을 자극적인 묘사없이 표현하는 것과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미의 광인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상은 여전히 어느 정도쯤 아리송했고 신춘문예 최초의 여성작가인 백신애와 이무영의 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작가들의 소설 마무리에는 각 문학상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와 작가의 약력, 누가 1회 수상자인지 등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도 더해져 있다. 


<무진기행>을 읽으며 예능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반대했다던 이유가 문득 생각났다. '단편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도록 쓴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두 단락만을 잘라서 답을 찾게 한다. 문학은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보는 거지 작가가 숨겨놓은 주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아니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나에게 한국 단편소설은 단락으로 기억되었고, 문제와 답이라는 단 두단어로만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 수많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도 단 한번도 교과서에 실렸던 그 이야기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무진기행>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한국 단편소설들은 몇 단락만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있으며 그들 역시 나처럼 이 이야기들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단지 해석해야만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의 재미를 발견해서 기분좋았던 <무진기행> 읽기는 동시에 왜 이런 재미를 늦게야 발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으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한국 단편소설의 반전 재미가 궁금하다면 <무진기행: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부터 시작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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