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역실록 - 12개의 반역 사건으로 읽는 새로운 조선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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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은 치명적인 유혹이며 갈망의 대상이다. 가질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는 자들의 역사,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들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는 권력에 대항하는 자들, 그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반역자라고 부른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 것이라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반역자들은 승리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부터 고려의 반역자가 아닌가. <조선반역실록>은 기존의 권력을 무너뜨린 승자와 실패한 자 모두에 대한 이야기이다. 승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반역자는 곧 악인이라는 정의는 덮어두자. 역사의 그늘에 숨어있던 반역자들을 통해 드러나는 조선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조선반역실록>은 그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 권력의 맛만큼이나 달콤하고 매혹적인 책이었다.

 

 

 

<조선반역실록>은 제목 그대로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12개의 반역 사건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12개의 이야기는 각각 단편으로 되어있고 마치 스피드하게 구성된 역사 단막극을 보는 것 같았다.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역적이나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혁명가인 이성계부터 아비의 역적이 되어 용상을 차지한 이방원,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된 수양대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권력을 쟁취한 승리자들이다. 하지만 <조선반역실록>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승리자가 아닌 반역자의 입장에 서서 들려준다. 그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조바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역사를 보는 것만 같았다.

 

 

분명 조선을 관통하는 12개의 사건이지만 이야기는 도돌이표처럼 무한 반복된다. 권력은 시대와 공간에 상관없고 그것을 욕망하는 자들의 시작과 끝도 어느 한 세대만 특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힘이 없는 왕은 백성보다 못한 존재이고 반역에 실패한 자들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조선반역실록>에는 수많은 힘없은 기존의 권력층의 몰락과 권력을 탐했지만 실패한 자들의 말로가 처절하게 표현된다.

왕요를 새로운 왕으로 뽑는 과정에서 조준은 정창군 왕요가 부귀한 환경에서 자라서 가산은 제대로 다스릴 수 있어도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재가 되지 못한다고 반대했다. 그래서 제비뽑기를 한 결과 결국, 왕요가 새로운 왕으로 결정되었다.

제비뽑기로 뽑힌 왕요가 바로 고려의 마지막 왕인 34대 공양왕이다. 이렇듯 <조선반역실록>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어이없는 사건들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다. 이성계, 이방원, 수양대군 외에 이성계 복위 전쟁에 나선 조사의,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태종의 처남들, 영문도 모르고 죽은 심온 뿐만 아니라 이시애, 남이, 정여립, 이관, 이인좌와 허균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반역실록>에는 권력을 탐한 자와 의문도 모른 채 역모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자들까지 수많은 죽음이 등장한다. 실제 역사서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역사 소설을 읽는 듯한 구성이 적절히 교차된 이 책은 흥미진진한 만큼 가독성도 좋다. 12개의 사건 중 가장 놀랍고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사건보다 인물에 관한 구절이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재사 정여립은 기축옥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의 광폭한 성정에 관한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리고 홍길동전으로 잘 알려진 허균이 국문도 받지 않고 역모로 몰려 죽었다는 것과 실제로는 대담한 정치꾼이었고 음흉한 전략가라는 사실, 자신의 꾀에 걸려 역적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했던 권력, 그것을 가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채 고문을 당하고 죽음 후 효수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그토록 가질 수 없는 권력을 욕망하는지 궁금해 졌다. 반역은 권력의 쟁취를 넘어서 시대를 변화시키는 역사의 큰 파도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든 기존의 권력에 맞서는 자들은 언제나 있다.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이 혁명가로 기억될지, 반역자로 기록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조선반역실록>의 반역자들 역시 자신의 신념과 갈망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이성계를 역적이냐 혁명가이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조선시대의 수많은 반역가들을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앞선 자들이었는지, 단지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었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 옳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바라보며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아낸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현재를 보았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반복되는 역사'라는 말처럼 <조선반역실록>에는 12개의 역사가 반복되고 그 역사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권력은 어느 시대나 목숨을 걸 만큼 가장 매력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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