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실화이다, 그리고 허구다. <예언>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디까지를 현실이었다고 믿어야 하며 어디까지를 소설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늘 그렇듯 김진명의 소설은 소름 끼친다. 역사와 소설의 경계선에 아슬하게 서있는 그의 이야기는 믿고 싶지만 믿기 싫은 것 투성이다.

<예언>은 1983년 9월 1일 새벽,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을 맞고 격추된 사건을 다룬다. 갖가지 의혹을 남겼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이 사건을 김진명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역사 왜곡을 잡아내고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의문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김진명의 소설은 통쾌하면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의 진실에 늘 슬펐다.

 

 

<예언>은 여동생을 미국에 입양 보낸 후 십사 년 만에 재회하는 지민의 행적을 따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남매는 부모를 잃었다. 여동생은 대학까지 보내준다는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 갔다. 한국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지민은 오직 하나, 여동생을 만날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데 드디어 대학에 입학한 여동생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여동생이 타고 오는 비행기는 대한항공 KAL 007. 지민은 다시 동생을 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만날 거라는 기약 따위 없는 진짜 이별이었다. 사건을 계기로 지민의 인생은 급변한다. 동생이 타고 있던 바로 KAL 007을 격추 시킨 러시아 조종사를 죽이기 위한, 오직 그 목적만으로 그만의 힘겨운 여정이 시작된다.

269명 승객의 가족 중에 많은 사람들이 지민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죽이고 싶다, 내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그자를 죽여버리고 싶다.' 과연 정말로 소설 속의 지민처럼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었을까. 지민이 미국으로 가고 그곳에서 소련으로 넘어가고, 마지막에 고르바초프를 만나는 긴 여정은 분명 허구일 것이다. 오직 진실, 잊혀진 사건과 망자들의 분통함을 풀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민의 모습은 남은 자들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소련을 간 지민은 드디어 KAL 007을 격추시킨 조종사를 만난다. 과연 지민은 동생의 복수,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 269명의 원한을 갚았을까? <예언>은 김진명의 다른 책과 달리 씁쓸함이 강한 책이었다. 진실을 알고 복수의 순간이 되면 통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그 순간에 다다르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죽을 사람인가, 그들 역시 하나의 소모품이 아닐까.

지민이 허구의 인물이라면 <예언> 속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사람인 문 총재는 실존 인물이다. 미국 감옥에서 지민을 만나 그를 각성하게 만들어 소련으로 갈 수 있도록, 고르바초프 앞에서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든 인물인 문 총재는 이야기의 말미에 북한으로 가 김일성을 만난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을 한다. 소련의 붕괴 등 여러 예측을 맞춘 문 총재의 예언이 과연 정말로 이뤄질 것인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읽은 김진명의 소설은 역시 경계선상에 놓여있었다. 이건 진짠가? 저건 가짤까? 끊임없이 헷갈리게 만드는 <예언>은 덮은 후가 더 기대되는 책이었다. 설사 그 예언이 소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한 구절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도 나는 진실이라 믿고 싶다. 아니, 정말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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