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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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의 첫 번째인 <나의 눈부신 친구>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바로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한껏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몰아치다가 다음 편에 계속이라는 허무한 문장만 남겨놓고 끝나버리는 드라마처럼 <나의 눈부신 친구>의 마지막 구절은 당장 다음 권을 읽도록 만들었다. 아이에서 소녀, 그리고 릴라의 결혼식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은 레누와 릴라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와 비교하면 잔잔한 호수에 불과한 것이었다. 1권보다 더 두꺼운 분량의 책이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더욱 다채롭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불안하고 아슬아슬했다. 시대가 다르고 나라와 환경이 다르지만 그녀들의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더욱 집중하며 쉼 없이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소설은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항상 고민되는 분야다. 특히 소설 중에서도 나폴리 4부작처럼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까지의 전 인생과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관계들을 꼼꼼하게 들려주는 소설의 경우에는 어느 것을 중심으로 리뷰를 적어야 할지 무척 난감하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단순한 북 스포일러에 불과한 리뷰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은 후 며칠 동안 리뷰를 적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다. 어떻게 이렇게도 깊고 매력적인 감정들의 표현이 가득한 소설을 소개해야 할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릴라의 결혼식으로 시작해서 레누가 소설을 출간하며 가지는 독자 간담회에서 니노를 다시 만나면서 끝난다. 660 페이지에 가까운 이 책 안에는 사춘기 소녀들의 변화무쌍한 감정처럼 릴라와 레누의 삶은 한순간도 평온하지 않았고 항상 더 큰 파도가 뒤이어 오는 너울거리는 바다와 같았다. 끊임없이 요동치지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그녀들은 점점 더 서로에게서 멀어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릴라와 레누뿐만 아니라 그녀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 역시 각자 자신만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이유가 있다. 왜 그렇게 사냐고 질타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릴라와 레누,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은 고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늘 싸우고 대립하고 분노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을 때는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 보였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안정적인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1권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지성인이라고 나오는 사람들 역시 모두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가 없으므로 그들의 그런 행동과 감정은 당연한 것인데 단지 보여지는 것만으로 나 스스로 규격화된 틀 안에 넣어서 판단하는게 아닐까. 1권에 이어 2권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조금씩 겹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릴라와 스테파노의 결혼식은 짐작했듯 순탄하지 않았고 릴라는 요양차 방문한 섬에서 니노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한때의 불타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릴라는 집을 떠나 니노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거기간은 딱 23일만 지속된다. 영원토록 지속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릴라와 니노 두 사람 모두 불안한 인간이었기에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고 그래서 그렇게 빨리 끝나버린 게 아닐까. '릴라가 그리워 미칠 것 같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릴라의 교육받지 못한 단순함, 지나치게 영리한 무지, 언뜻 들으면 대단한 영감 같지만 실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리움이 식어갔다.'라는 문장은 릴라를 잘 표현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레누는 안토니오와 헤어지고 니노와의 사랑을 꿈꾸며 그가 있는 섬을 찾았지만 결국 니노는 릴라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레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릴라가 엔초와 살기 시작할 때 레누는 소설을 쓰고 피에트로의 도움으로 책을 낸다. 단편적으로만 보면 릴라는 점점 힘들어지는 삶, 레누는 지긋지긋해 하던 나폴리를 조금씩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누 역시 릴라와 마찬가지로 흔들리고 상처받고 좌절하며 한 걸음씩 걸어나가고 있다. 가끔씩은 피폐해져 보이는 릴라보다 주변의 눈에 맞추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레누가 더 힘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인간이란 한순간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거야.

인생을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수많은 선택이 등장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조차 뒷장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도 역시 많은 선택의 기로가 나온다. 누구나, 언제나,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옳을 거야, 이 선택이 최선일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릴라와 레누 역시 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새 나도 그녀들이 되어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릴라가 이런 선택을 했는데 나라면 다른 쪽으로 가보겠어. 레누의 자신감 없음, 견뎌내는 힘이 나에게 있었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등등 그녀들의 삶과 나의 삶을 오고 가며 끊임없이 생각해봤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처럼 몇 마디의 단어와 문장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책의 매력은 누구에게나 수백 가지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누구는 자유분방한 영혼, 여자라는 틀에 갇혀 버둥거리는 릴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레누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어머니를 닮아 정신적으로 약한 안토니오, 돈에 미친 솔라라 형제뿐만 아니라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에게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숨기고 싶은 모습을 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섬세한 감정 표현,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등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는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소설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책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문제들을 통해서 우리는 나를 다시 보고 이해하고 문제의 해답을 찾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소설의 역할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해낸다. 역시나 2권의 마지막은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을 만큼, 2권처럼 다시 3권을 당장 읽고 싶게 마무리한다.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니노 사토라레였다.' 레누가 니노를 만난 후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 누가 떠나간 자인지, 왜 머무른 건지 당장 알고 싶어졌다. 그녀들의 격정적인 삶이 또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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