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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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번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들은 역사의 한 귀퉁이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현재도 진행 중이다. 슬프게도 우리에게 아픔을 준 나라들뿐만 아니라 정작 우리조차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으며 불편하니까 그냥 외면하고 싶어 한다. 꽤 오래 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제강점기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현재이다. 핍박과 고초를 겪은 어르신들은 생존해 계시고 우리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깊은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인 이슈가 될 때만 분노하고 정작 한 발자국씩 떨어져서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과거의 일이고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수많은 책과 영화 등을 통해서 일제강점기 때에 겪은 한국인의 고된 삶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일제강점기를 끝내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 수많은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렇다.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들 역시 원폭의 피해자였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흉터의 꽃>은 내게 또 하나의 충격이었고 아픔이었다.

 

경상남도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곳에 원폭 피해자들이 함께 살고 있으며 그분들뿐만 아니라 2세와 3세들까지 여전히 피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흉터의 꽃>은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었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절대 과거에서 끝이 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래서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실재이다. 불편하지만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되고 한켠으로 밀려나버린 해결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이었다.

<흉터의 꽃>은 원폭 피해자인 아버지를 둔 건강한 2세인 주인공이 우연히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과정을 들려주는 책이다.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살고 있는 강분희 할머니의 인생, 그녀의 아버지와 딸 그리고 손자까지 대를 이어서 겪고 있는 슬픔을 함께 이야기한다. 강분희 할머니가 원폭 피해를 겪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과거와 피폭된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운증후군인 딸이 있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설가인 정현재의 이야기가 마치 하나로 이어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흉터의 꽃>을 읽으면서 길을 잃었다. 어느 순간부터 어디까지가 가상의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혼란스러웠다. 가상과 실재의 경계가 무너진 <흉터의 꽃>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지만 그래서 더욱 등장인물들의 인생에 깊숙이 빠져들어 함께 슬퍼하고 울어줄 수 있었다.

 

 

책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다고. 8시 15분 15초의 히로시마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열심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굶지 않지 위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나고 자라온 조선을 떠나 일본에 정착한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떨어진 폭탄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죽음의 방사능은 사람들 몸속에서 끈질기게 살아서 피폭자와 그들의 자녀, 그리고 자녀의 자녀들에게까지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날의 아비규환 이상의 아픔을 물려주고 있었다.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던 7만 명의 조선인들 중에 3만 명이 비참한 죽음을 맞았고 2만 명이 피폭을 당했다고 한다. 3만 명, 2만 명. 어느 정도로 많은 사람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숫자이다. 그 숫자의 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흉터의 꽃>은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만 그 후에 등장인물들이 겪게 되는 한국에서의 삶은 피폭 당시 보다 더 처참한 것이었다. 그래도 부모, 형제와 친구들이 있는 고향에 오면 낫겠지라는 생각은 그들에게 더 큰 비참함만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다.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일본에서보다 더 큰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픈 삶이 너무나도 슬펐다. 하늘이 맑고 햇살이 너무 좋은 날에 읽었지만 <흉터의 꽃>을 읽는 내내 주변은 회색빛이었다.

 

 

주인공인 정현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아버지가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 히로시마에 있었으며 자신의 딸이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아픔이었다. 그는 이유는 모르지만 늘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의 결과로 자신만의 성을 가졌지만 그의 성안에 받아들일 수 없는 딸이 생겨버렸다. 그는 바로 우리들이다. 불편함에 맞서기 보다 외면하는 쪽을 택하는 정현재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강분희 할머니와 그녀의 딸을 만나고 그녀들의 힘겨운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를 얻었고 한 단계 더 성장했다.

<흉터의 꽃>의 말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대한민국은 핵의 나라야. 우리 모두는 핵을 머리에 베고 살고 있어.' 원전의 문제가 심심찮게 들리지만 우리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우리는 방사능의 위험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것들을 별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책 속에서 K가 이야기하는 이 문장은 무척 섬뜩했다. 원폭이 소설의 소재가 아니고, 과거 일본에서 일어났던 슬픈 역사가 아니라 충분히 현재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좋은 소설을 읽었고 꼭 필요한 책을 만났다. 소설이라고만 하기엔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실재이고 이름만 다를 뿐 아마 그녀들의 이야기는 분명 지금 치열하게 살아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일 것이다. <흉터의 꽃>이라는 책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문제이다. 과거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들 중의 하나지만 놓치고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흉터는 자주 살피고 관리해야만 잘 아무는 법이다. 보기 싫다고 불편하다고 못 본채 해 버리면 결국 더 큰 상처로 돌아오게 된다. 아직 원폭 피해는 우리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잘 살피고 어루만져 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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