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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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에 대한 평가를 서평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책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만한 지식도, 지혜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평이라는 말 대신에 리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왠지 서평이라는 말은 조금 부끄럽다. 특히 <죽은 올빼미 농장>과 같은 독특한 소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정신없이 책을 읽어 내려갈 만큼 이 책은 무척 신선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그와 동시에 자꾸만 그런 물음이 떠올랐다. '어떻게 써야 할까?'

<죽은 올빼미 농장>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뜬금없이 리뷰에 대해 잠시 적어봤다. 이 책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한 것과 <죽은 올빼미 농장>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겐 충분히 매력적이고 흡입력 높은 소설이었지만 사람에 따라 그 매력을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가진 수많은 변수에 따라 <죽은 올빼미 농장>은 전혀 다른 책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 뭐야?' <죽은 올빼미 농장>을 읽는 내내 당황스러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말 늦은 오후 가볍게 읽을 책을 고르던 중 독특한 표지 디자인의 <죽은 올빼미 농장>이 눈에 띄었다. 제목부터 남다른 포스를 풍기고 있지만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적당한 분량의 한국 소설이라 부담 없이 읽기 좋을 것 같아서 집어 들었다. 곧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번 읽기 시작한 <죽은 올빼미 농장>을 다시 덮기는 쉽지 않았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주인공인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다섯 편의 단편이 이어진 한 권의 중편소설이다. 하지만 다섯 편의 단편 모두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인 듯 어떤 이야기는 스럴러인양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고 또 다른 이야기는 현실의 문제점을 콕콕 집어내는 대사들로 가득 차 있어 그 의미를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2003년에 출판된 것으로 2017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것이다. 14년이라는 세월의 거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 책은 세련되고 때로는 우울하면서도 무서웠다.

 

 

<죽은 올빼미 농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의 구조도 없다. '나'라는 주인공이 어느 날 우연히 죽은 올빼미 농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지 두 통을 받게 되고 '나'는 편지 속에 등장하는 농장을 찾아서 고성으로 떠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에 나는 '나'의 시각으로 <죽은 올빼미 농장> 안에 서 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에 대한 존재, '나'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인형', 그리고 '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변 인물들까지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왠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앞 페이지를 뒤적이며 다시 읽기도 했다.

처음 <죽은 올빼미 농장>은 내게 혼돈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도대체 이 책은, 그리고 '나'라는 주인공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죽은 올빼미 농장>을 '나'의 시각이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에서 다시 읽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손자'의 입장, '인형'의 시각, '민'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중편의 한국 소설을 읽었지만 마치 몇 권의 책을 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처음에 그렇게 혼란스러웠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나'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 그는 어른이지만 어른이라는 껍데기를 쓴 채로 살아가는 어른인 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성장했지만 또한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아마 <죽은 올빼미 농장>의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른'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렇고 쉴 틈 없이 흔들리고 있는 내 주변의 많은 어른들 역시 그렇다. 우리는 자랐지만 제대로 성장통을 겪지 않아서 늘 불안하고 상처받고 쿨한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정말 어른일까?

나는 세상이 워낙 복잡하고 변화가 빨라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민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다고 해서 실눈 뜨고 볼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찾아보면 내게도 그런 점이 있을 것이다.

민은 요즘 아이들은 징그러울만치 리얼리스트들이라고 했다. 리얼리스트들은 원래 집착이 없는 법이지, 하고 민은 말했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굳이 어른이 나서 현실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고.

"애를 낳고 싶어 했다고요." "그게 뭐 어때서요?" "예?" "애 낳고 싶어 하는 게 어때서요? 자기가 여잔 줄 알았다면서요? 여자면 대게 그러지 않나?"

<죽은 올빼미 농장>의 '나'는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물러선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배려하는 듯 하지만 관심을 두지 않는, 말 그대로 '어른'인 채 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올빼미 농장을 찾아다니고 주변 사람들과의 문제를 겪으며 그는 조금씩 자신만의 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가 진짜 '어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던 '나'가 성장을 시작하는 출발점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죽은 올빼미 농장>의 다음 이야기가 있었으면 했다. '나'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는 다시 '인형'을 찾지 않았는지, 다시 자신만의 공간인 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 않았는지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우리 '어른'들에게는 모두 '나'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가 끊임없이 비밀을 나누던 '인형'과 같은 존재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걸 알고 있느냐, 모른 채 살아왔느냐는 것인데 <죽은 올빼미 농장>을 읽은 후에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는지, 단지 '어른'이라는 껍데기만 쓴 채로 척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말이다. '나'는 이제 막 늦은 성장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이 허울뿐인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늦었지만 제대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이제부터 찾아볼까 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당신은, 진짜 '어른'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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