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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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두고 내린 물건을 본 적이 있다. 저걸 가지고 가서 역무원에서 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리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남의 것이라 만지기가 망설여졌다. 마침 내리는 역이 마지막 역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그 물건을 눈으로 지키는 것뿐이었다. 역에 도착하고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 걸 확인한 후 지하철을 내리면서 만난 청소 아주머니께 잃어버린 물건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우산처럼 자주 잃어버리는 물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잃어버린 우산을 잠시 안타까워하지만 곧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주 작은 물건도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어 꼭 다시 찾고 싶을 만큼 귀중한 것도 많을 것이다. 물건에는 그것을 가진 사람의 시간이 깃들여져 있다. 분실물 센터에 쌓여가지만 찾아가지 않는 수많은 물건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다루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분실물들을 보고 있으니 주인을 잃어버린 동물이나 사람들로 붐비는 공원에서 부모님 손을 놓쳐버린 아이처럼 애처로움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저 물건들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이 책은 철도에서 잃어버린 분실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 유실물 보관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실물 보관소의 직원 모리야스 소헤이와 그가 돌보고 있는 펭귄이 글의 중심이다. 펭귄이라니. 그것도 일본에서. 마치 동화나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펭귄이 철도를 타고 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은 펭귄이 타고 다니는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노선을 펭귄철도라고 부른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처럼 내가 타고 다니는 지하철에 진짜 펭귄이 타고 다닌다면 어떨까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해 봤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에는 4개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고양이와 운명에서 주인공인 교코는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의 유골이 담긴 가방을 잃어버린다. 그 가방을 찾기 위해 소헤이가 근무하는 유실물보관소를 방문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팡파르가 들린다는 인터넷 게임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등학생 은둔형 외톨이가 우연히 분실물센터를 방문하게 되면서 다시 현실세계로 나가는 용기를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3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살아온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각의 단편들에서 펭귄이라는 다소 독특한 등장 동물만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와 상처, 그것을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게 단숨에 읽어 나갔다. 앞선 3편의 단편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히 마무리되는 것이 좋았지만 특히 마지막 장의 스위트 메모리즈는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에서 가장 궁금했던 펭귄의 존재, 소헤이가 가끔씩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또 하나의 단편인 것처럼, 하지만 그 안에는 앞선 등장인물들의 사건 이후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있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는 세 가지 맛이 나는 애피타이저를 먹은 후 먼저 먹어본 애피타이저들과 너무 잘 어울리는 또 하나의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운명에 자기 인생을 맡기면 편하겠지만 인생이 아까워.

빨간색이 도저히 싫으면 다른 가발을 선택하면 되는데 전 빨간 가발을 선택했어요. 머리 모양에 맞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는 얘기는 핑계예요. 빨간 머리가 정말 싫었다면 조금 머리 모양에 안 맞더라도 다른 가발을 선택하면 됐으니까요. 제가 선택한 거예요. 틀림없이. 빨간 가발이 좋다고, 자신이 결정한 거예요. 떠밀린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이 결정했다.....

'옮긴이의 말부터 읽는 독자도 있다고 하니 펭귄이 왜 분실물센터에 있는지 이 지면을 통해서는 밝히지 않겠다'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왜 펭귄이 센터에 사는지 궁금하더라도 이 책은 꼭 1장부터 순서대로 읽어보길 권한다. 각각의 단편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의 복잡하지 않은 구조와 갈등 속에서 느끼는 진한 감동의 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은 모르지만 모두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라는 말처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그들은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책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주는 존재가 되고 있다. '나토리 사와코'라는 소설가를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요란하지 않고 고요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토리 사와코의 또 다른 이야기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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