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위대한 개츠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독서에서 빠지지 않는, 세대를 뛰어넘는 명작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책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읽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나는 독서의 깊이가 얕고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는 '책'만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직 고전이라는 분야의 책들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마음 먹고 책장 한가득 꽂아두었지만 늘 몇장 읽다가 포기하고 만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내게는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섬세한 문체와 인간의 본성을 솔직히 드러낸 작품, 영미권 최고의 소설이라는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게 꼭 끝내야 할 숙제와 같은 책이었다.


한국에는 수많은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유명한 책일수록 언제나 번역과 오역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현재 번역서만 60여종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책이 가장 원작에 가깝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책이 시중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의역'에 있다고 말하는 이정서 번역가의 책으로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번역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비교하며 가장 원작에 가까운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 책이다. 번역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읽은 후라서 그런지, 예전과 다른 감성을 가져서인지 몰라도 이번에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분명 옛날에 한숨쉬며 읽다가 덮어버렸던 그 책이 아니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는 책이라 따로 자세한 줄거리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아직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적고싶다. <위대한 개츠비>는 가느다란 줄 위에서 위태롭게 한 여자를 따라가는 남자와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남자를 외면하고 다른 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흔들거리는 줄 위에서 여자는 건너가 버리고 결국 여자의 뒷모습만 보며 따라가던 남자는 줄 위에서 떨어지고 만다. 누군가는 <위대한 개츠비>를 로맨스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로맨스'라는 1차원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 책은 사랑뿐만 아니라 사람, 그 당시 사회에 관해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개츠비가 사랑하는 여자인 데이지는 사랑보다 자신의 물질적인 욕망에 더욱 충실한 여자다. 그런 데이지를 위해 개츠비는 그녀가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저택을 구입하고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채워 놓았다. 개츠비가 자신의 옷을 데이지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셔츠를 보면서 데이지는 격렬하게 울기 시작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그녀는 흐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두터운 옷더미에 묻혀 작아졌다.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슬프게 만들어요."


학창시절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는 개츠비가 왜 자신의 셔츠를 사랑하는 여자에게 보여주는지, 여자는 왜 또 그걸보며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나는 그녀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데이지라는 여자를 무척 잘 표현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이해한다는게 나에게도 역시 그녀와 비슷한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내가 만약 데이지라면 나는 바람둥이 남편을 버리고 나만 바라보는 개츠비를 선택했을까.

 

 

"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원해요!" 그녀는 개츠비에게 소리쳤다. "나는 이제 당신을 사랑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과거는 어쩔 수 없어요."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는 한때 그를 사랑했었지만 당신 역시 사랑했어요." 개츠비의 눈이 열렸다가 닫혔다. "당신은 나 역시 사랑했다고?" 그는 되뇌었다.


서로 마주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데이지처럼 이런 우유부단하고 사랑보다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한 여자라면, 그리고 그런 여자를 목숨바쳐 사랑하는 개츠비는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직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 보지 않았다.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경우,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보게 되면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주인공들의 감정을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감독과 배우들을 통해서 해석된 영화를 보고 나면 책이 무척 밋밋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위대한 개츠비>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위대한 개츠비>에는 강렬한 분노나 사랑에 대한 열정, 욕망에 대한 표현이 최대한 절제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한 실을 한가닥 한가닥씩 살포시 책 위에 겹쳐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슬아슬하지만 격정적이지 않고 화려한 표현들도 단조롭게 느껴질만큼 책은 마치 곧 엄청난 물결을 일으킬 것만 같은 폭풍전야의 호수와 같았다. 닉을 통해서 표현된 개츠비의 사랑은 이게 과연 사랑에 미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서 절대 한번만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중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가장 좋아하지만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을 말하라면 <위대한 개츠비>를 꼽을 것이다. 책마다 받아들여지는 시간이 따로 있듯이 사람마다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있다. 사랑에 힘들어했던 사람이라면 <위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고 흙수저를 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개츠비의 치열함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시간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느끼고 고민하는 질문들이 아마 몇 년후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을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다시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다면 누가 나쁘고, 누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어렷을때 읽다가 포기한 몇 번은 없는 걸로 치겠다. 2017년에 <위대한 개츠비>를 첫번째로 완독했다. 몇년도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을 세번은 읽어볼 것이다. 두번째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다시 이 리뷰를 읽었을때 한심하게 읽었다고 생각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할까. 책장 잘 보이는 곳에 <위대한 개츠비>를 꽂아두었다. 지금 이 감정들이 잊혀질때쯤 다시 사랑에 목숨걸었던 그 위대한 개츠비를 만나볼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