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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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을 타듯 톡톡 떨어지는 문장들의 경쾌함과 달리 <수잔 이펙트>는 꽤 긴 호흡을 가진 책이다. 휴~~긴 한숨과 함께 책을 덮었다. 마치 24부작의 중편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책을 읽다 보면 영화로 만들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책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수잔 이펙트>는 영화보다 드라마에 더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페터 회의 소설을 읽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책으로 페터 회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수잔 이펙트>를 읽으며 문득 내가 언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었나 궁금해져 책을 찾아봤다. 2008년 8월. 나는 그를 9년 전에 알았구나. 꽤 오랜만에 읽은 그의 책은 역시나 내게 마냥 쉬운 책은 아니었다.

유럽 작가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늘 독특하고 낯설다. 분명 나는 한글로 책을 읽고 있지만 어떻게 이렇게도 각 나라별로 느낌이 다른 건지 책을 읽을 때마다 신기하기까지 하다. 덴마크 작가인 페터 회의 <수잔 이펙트> 역시 신선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느낌의 소설이었다. 아마 그래서 초반부에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읽기 어려워서 표시해 놓은 부분들을 다시 봤다. '왜 이런 걸 어려워했지?'라고 생각할 만큼 의외로 쉽게 읽혔다. 역시 익숙함이란 대단한 거구나.

<수잔 이펙트>는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비해 큰 줄기는 간단하다. 인도로 여행을 간 수잔의 가족들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권력자들은 하나의 임무를 제시한다. 수잔은 가족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들이 조건으로 내건 일을 하게 되는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점점 더 일상과 멀어지고 더 큰 어려움 속에 빠져들게 된다. 수잔이 알게 된 '미래위원회'는 무엇이며 왜 국가의 엘리트들은 '미래위원회'가 작성한 마지막 보고서를 원하는 걸까?

<수잔 이펙트>라는 제목처럼 수잔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독특한 재능이 있다. '수잔 효과'라고 부르는 그것은 누구나 수잔 앞에서는 진실만을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잔의 남편인 라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고 그 두 명이 함께 있을 때 효과는 배가 된다. 바로 그 재능 때문에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재능 덕분에 한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을 진실을 밝히게 된다.

 

 

11월의 어느 날 밤 그 친구가 술에 취한 채 오줌을 누려고 뉘하운 부두에 서 있다 물속으로 떨어졌어요. 그런데 마침 순찰차가 뉘하운 다리를 지나고 있었죠. 경찰관들이 물속에서 건져냈는데 두 달간 혼수상태였다가 기적처럼 깨어났죠. 두 달 후 그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년 후 지난번과 똑같은 자리에서 오줌을 누가 물속으로 떨어졌어요. 이번에는 지나가는 경찰차가 없었고 다음 날 아침 수로 바닥에서 죽은 채 발견됐어요. 서구 세계는 이 남자와 똑같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실수에서 뭘 배우는 미래가 아닙니다. 실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기도 싫어하는 미래예요.

<수잔 이펙트>를 읽고 이해하는 방향은 여러 가지이다. 책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 중 나는 결국에 수잔이 세상에 폭로하는 그 비밀들, 그것이 단지 소설 속의 허구가 아니라 어디선가 분명히 있을 법한 내용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미래위원회'가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인간의 습성과 역사의 반복되는 현상들,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서 도출해낸 결과이다. 세상에 등장하는 수많은 허구를 이야기하는 소설과 상상들 역시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며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구 어느 곳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내게 <수잔 이펙트>는 단순히 흥미진진한 스릴러가 아니라 책 속의 '미래위원회'처럼 미래와 현재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잔에게 닥친 일은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수잔 효과'는 그녀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100 정도의 어마어마한 일을 10 으로 생각하고 1 처럼 재빠르게 행동하는 그녀의 대담함과 무모함도 함께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읽어 본 페터 회의 이야기, 유럽의 소설은 일단 이야기에 익숙해지기까지 예열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낯선 덴마크 이름과 지형, 가끔씩 놀랄 정도로 시크한 문장이 눈에 익기 시작하면 바로 <수잔 이펙트> 안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생각해 봤다. 진짜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에게 다른 누군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걸까? 개인과 집단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질 않았다. 소설을 읽었지만 소설을 읽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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