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공중그네>를 통해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재미있다는 추천에 처음 접해본 그의 작품은 한 편의 속 시원한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공공장소에서 읽기에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공중그네는 역시나 읽는 내내 키득거리게 만들었다. 사회의 모순, 인간의 어두운 면을 배배 꼬아 툭~던져놓으며 보란 듯이 웃겨주는 그의 소설은 재미있고 유쾌했다. 오랜만에 다시 그를 만났다. 그것도 <버라이어티>라는 듣기만 해도 어떤 경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기대되는 제목으로 왔다.

 

 

<버라이어티>는 오쿠다 히데오의 스페셜 작품집이다. 단편 모음집이지만 단순하게 단편소설 몇 편을 묶어 출간된 책이 아니다. 소설의 형식이나 내용, 발표된 시기가 모두 다른,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버라이어티' 하게 <버라이어티>라는 스페셜 작품집으로 탄생했다. 단편부터 대담까지 오쿠다 히데오의 매력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버라이어티>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버라이어티>에는 총 9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는 각각이 하나의 단편으로 구성되었지만 두 개는 이어져 있다. '나는 사장이다'는 나카이 가즈히로가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를 차리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매번 고맙습니다'에서 힘겹게 회사를 꾸려나가며 조금씩 변화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연결되어 보인다. '나는 사장이다'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회사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한 회사원이 사회의 냉혹한 바람을 정신없이 맞는 모습은 웃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했다. 나쁜 방향이든, 좋은 방향이든 가즈히로는 조금씩 변화해 간다. 두 번째 단편에서도 그는 어쨌든 잘 버텨내고 있다. 나카이 가즈히로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지는 단편이었다. 시리즈로 출간할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단편이 아닌 장편소설로 만나고 싶을 정도로 흡입력 높은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큰 회사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바깥에서 보는 경치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오쿠다 히데오의 특징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드라이브 인 서머' 와 크로아티아와 일본의 축구 경기를 크로아티아인의 시각으로 관람한 '쇼트 쇼트 스토리'는 독특하다. 그리고 미스터리 한 종업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더부살이 가능'은 마치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세븐틴'을 읽으면서 다시금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딸의 첫 경험을 걱정하지만 선뜻 말할 수는 없다. 어쨌든 결국엔 딸을 응원해주는, 실제로 열일곱 살의 딸을 둔 엄마가 쓴 것처럼 엄마의 섬세하게 변화하는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어느 이야기 하나 놓칠 수 없는 각양각색의 유쾌한 그의 단편들이 가득한 <버라이어티>는 오쿠다 히데오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어울릴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책이 있다. 읽을 때보다 읽은 후에 더 많이 생각나는 책, 문득 그 부분이 읽고 싶어 다시 책을 꺼내 읽게 되는 책. 나에게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오쿠다 히데오'의 책이다. 책 속 구절과 인물의 대사들이 일상 속에서 묘하게 겹쳐지면서 생각나는 여운이 있어서 좋다. <버라이어티> 역시 그랬다. 일을 하면서 문득 '나는 사장이다'의 가즈히로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의 마음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회사 동료 부친의 부고를 들었을 때 '여름의 앨범'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게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누나도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래, 히로코까지. 울면 안 돼."
따라서 마사오도 울었다. 셋이 모두 엉엉하고 울었다.
"안 된다니까, 울면."
게이코 짱은 뭔가를 참고 있는 듯 이를 앙다물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매미와의 합창이 되어 잠시 동안 경내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오쿠다 월드라고 한다. 마니아적인 매력이 가득한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버라이어티> 역시 그의 책을 읽는 재미를 톡톡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재미있는 일본 소설을 읽어 보고 싶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오쿠다 월드로 입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각자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단편소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버라이어티>로 웰컴 투 오쿠다 월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