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습니다 - 때론 솔직하게 때론 삐딱하게 사노 요코의 일상탐구
사노 요코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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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재 이곳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우리에게 사는 건 별거 없는 것이라고 시크하게 이야기한다. <문제가 있습니다>는 전쟁을 겪고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일본인 사노 요코의 에세이이다. '사는 게 뭐라고''죽는 게 뭐라고'를 통해서 인생의 진리를 솔직하고 삐딱하게 들려준 사노 요코 할머니는 -저자보다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다- <문제가 있습니다>에서도 역시나 그녀의 이야기를 진솔하지만 시크하게 담아내고 있다.

모든 책이 작가의 생각을 담아내지만 특히 에세이는 작가의 숨겨둔 마음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나이와 성별, 직업에 따라 에세이는 읽는 느낌이 판이하게 다르다. 나는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처럼 초로를 살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좋다. 사노 요코 할머니의 책은 그녀를 저자 대신에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편안하다. 물론 그녀가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나 삶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전쟁에 패한 민족의 삶, 변화하는 국가에서 살아온 사람, 두 번의 이혼을 하고 신경증에 걸린 사노 요코 할머니의 이야기는 언뜻 읽어보면 꺼끌꺼끌해서 피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마 무척 시크하게 툭툭 던지듯이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투가 그런 느낌을 배가 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문제가 있습니다>가 편한 책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런 모든 것이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 게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별게 없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누구나 비극인 것이 인생인 것처럼 의도치 않게 태어난 후 우리 모두는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만약에 그녀가 '저는 전쟁에 패한 일본인으로 타국에서 살아서 힘들었어요, 너무 가난한 국가에서 살아가느라 괴로웠어요, 애정을 주지 않은 어머니와 두 번의 이혼, 아들과의 관계 때문에 내 인생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아왔답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당장 책을 덮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가 좋았다. 세월이 켜켜이 묻어있는, 인생에서는 무슨 일이든 생길 수도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좋았다.

 

 

수십 년이나 지난 후에 사촌 언니가 말했다. "저기서 꾀죄죄한 여자가 걸어오는데 가까이서 보니 요코잖아. 불쌍해서 그냥 갈 수 있어야지." 그 화사한 스웨터는 아마 수입품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불쌍했다. 아, 불쌍해.

곳곳에서 뿜어대는 요코 할머니의 시크함에 킥킥거리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창 꾸미고 싶은 나이에 허름한 옷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녀는 계속 취미가 없어서 책을 읽어댔고 많을 책을 읽었지만 아는 것이 없다, 기억력이 없어서 잘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누구보다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고 알고 있는 그녀는 단지 아는 척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무심히 한마디 던지겠지. 몰라요, 잊었어요.

한참을 먼저 살았던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일본 근현대사의 작은 부분을 읽는 것 같아서 이런 아날로그적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습니다>는 변혁의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작가가 견디며 살아보니 알게 된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는 책이다. 그녀의 인생 곳곳에 숨겨놓은 조언을 찾아서 자신의 인생으로 옮기는 건 독자의 몫이다.

성질은 평생 변하지 않으므로, 누구든 자기 성질이 불러들인 인생을 살게 된다.

나도 언젠가 죽겠지. 암으로 죽어도 사고로 죽어도 좋아. 하지만 치매만은 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죽어가는 여정은 선택할 수 없다. 엄마도 치매가 되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니까.

누군가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건 존경심과 안도감을 함께 느끼게 한다. 더욱이 <문제가 있습니다>처럼 삶의 속도보다 국가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른 시대를 통과해 온 사람의 이야기는 경외감까지 든다. 그렇지만 그녀는 말한다. '그게 뭐 어떻다고?' 별거 아니라고 시큰둥하게 말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는 유쾌한 삶의 지혜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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