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저녁식사 약속이 생겼다. 퇴근 후 헐레벌떡 지하철로 뛰어들었다. 지하철은 책 읽기에 최고의 공간이라 출근하면서 <오늘 뭐 먹지?>를 챙겼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에 부담 없이 읽기 좋고 가방 안에 넣고 다니기 가벼워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오늘 뭐 먹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아뿔싸, 내 실수다. 이 책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린 후 주린 배를 움켜쥔 채 퇴근하면서 읽어서는 안될 책이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책 표지에 속았다. 이토록 귀여운 음식 그림이 억누르고 싶은 내 식욕 본능을 마구마구 일깨울 줄이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내내 침을 삼켰다. 저녁을 뭘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늘 그렇듯 무난하게 스파게티를 먹으려던 계획은 이미 없었던 일이 되었고 나는 <오늘 뭐 먹지?>를 읽은 날, 초밥과 우동을 먹고 일본식 선술집에 갔다. 포만감에 누워 있는 나오코의 모습이 그날 나의 모습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화로 된 책을 읽었다. <오늘 뭐 먹지?>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인 다카기 나오코가 2011년 건강잡지 '몸의 책'에 연재한 '다카기 나오코의 오늘 뭐 먹지?'를 계절별로 나눠 묶어 낸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음식 레시피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뭐 먹지?>는 요리 레시피가 아니라 일본에서 홀로 살고 있는 미혼 여성의 혼밥과 혼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책이었지만 달라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음식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나눠 각 계절별로 먹기 좋은 음식을 소개한다. 책에 나오는 모든 음식은 그녀가 직접 만든 것으로 그 중에는 요리무식자인 나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음식도 있었다. 일본 작가라 그녀가 소개하는 음식 중에는 처음 알게 된 것도 있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뭐 먹지?>가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녀가 알려주는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만화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귀엽고 깔끔한 만화 형식으로 일본 음식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오늘 뭐 먹지?>를 음식을 통해서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독특한 힐링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나처럼 미혼에 직장을 다니는 여자들은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배가 되겠지. 나는 혼자 살진 않지만 혼밥과 혼술을 좋아해서 그림 속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물과 함께 마시는 술이 덜 취한다는 방법을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저자도 자신만의 규칙으로 세운 걸 보면서 풉~웃음이 터져 나왔다. 토필이라는 생소한 나물을 가족들과 함께 채취하는 장면에서는 고사리를 꺾기 위해 허리 굽혀 열심히 산을 헤매고 다닌 우리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공간에 살고 있지만 음식을 매개로 많은 사람들은 서로 같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추억이었고 지금의 내 모습 중의 하나였다.

분명 <오늘 뭐 먹지?>는 요리책이 아닌데 책을 읽고 나니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힘들고 지칠 때도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하는 나오코를 보며 그동안 내가 먹는 것을 너무 소홀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다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홀로 먹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 저자는 책을 통해 그 행복함을 알려주고 있다. 나를 위한 소박한 음식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주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주말 저녁에 마시는 맥주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나오코의 <오늘 뭐 먹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배고플 때 읽으면 안 될 책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더 행복하게 먹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그녀가 묻는다.
'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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