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손철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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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다음 생이 있다면, 그리고 그 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선택할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화가이다. 어중간하게 그리는 실력 덕분에 평생을 질질 끌고 다니는 나의 소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 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그림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미술 작품을 잘 알지는 못한다. 예술 그 자체가 전해주는 감동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예술품 역시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안다면 그 작품은 처음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품을 읽어주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는 그림뿐만 아니라 우리의 음악인 국악도 함께 들려주는 책으로 옛 그림과 옛 소리를 색다른 시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옛 그림을 소재로 강의하는 손철주 작가의 6강에 이르는 강의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소리가 그리는 그림'을 음악, '붓이 퉁기는 음악'을 그림이라고 이야기한다. 음악이 그림에 스며든 것을 은일, 아집, 풍류라는 세 가지의 주제로 나눠서 설명한다. 세상과 떨어져서 숨어산다는 은일,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모인다는 뜻의 아집 그리고  옛 그림과 음악의 흥겨움인 풍류가 담겨 있는 옛 그림에 대한 설명은 우리 그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히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서양의 그림에 압도되는 웅장함이 있다면 우리의 옛 그림은 무념무상, 아무 걱정 없이 생각 없이 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유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토리텔링도 들어있다. <흥>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바로 '전' 이라는 단어에 관한 것인데 '전 신윤복' 이라고 적혀있는 그림은 신윤복이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렸다고 말해지는 것으로 전하는 작품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숨어산다는 은일도 제대로 숨는 것과 숨은 척하는 것으로 나눠지는데 강희언의 그림에서 보면 다리가 표현되어 있다. 다리는 내가 세상에 나가는 것도 되지만 세상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것은 참된 은사가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그림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흥>을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재미있게 읽어 나갔다.

음악이 있는 옛 그림을 읽어주는 책답게 그림 안에 표현된 다양한 악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산속에 숨어살 때도, 모여서 함께 즐기기 위해서도, 더불어 즐기기 위해서도 절대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음악이다. 그리고 음악과 더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친구와 술이 아닐까? 우리의 옛 그림에서도 친구들과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즐기는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다른 것이 없나 보다. 하지만 예전에 더 품격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옛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임의 기준이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장기와 바둑으로 사귀는 모임은 하루를 가기 어렵고, 술과 여색으로 사귀는 모임은 한 달을 가기 어렵고, 잇속을 따져서 모이는 모임은 1년 가기 어려우니, 살아서 평생 갈 수 있는 모임은 문장을 남기는 모임이다.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는 눈으로만 보고 읽는 책이 아니라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어야 하는 책이다. 우리의 옛 그림은 눈으로만 보면 끝없는 고요함과 정적인 매력만을 알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흥을 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면을 발견할 것이다. 그림 속에서 단원이 들려주는 생황, 옛 선비가 연주하는 거문고를 들으면서 옛 그림의 멋과 운치를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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