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스하고 산뜻한 골칫거리
닐스 우덴베리 지음, 신견식 옮김 / 샘터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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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작은 마루가 달린 한옥에 살았던 적이 있다. 밤이 되면 내 방문 앞에서 늘 고양이가 울어댔다. 어른들은 고양이가 영악해서 애들이 있는 방을 잘 안다고 했다. 왜 우는지는, 정확하게 내 방문 앞에서 우는지도 몰랐다. 창호문 넘어 어렴풋이 비치는 고양이의 실루엣과 마치 아기가 울어대듯 끝없이 야옹거리는 고양이는 어린 시절 내게 엄청난 공포였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를 정말 싫어했었다. 개와 달리 먹이를 주거나 불러도 오지 않고 잘못 만지기라도 하면 사납게 할퀴어대는 고양이를 도대체 왜 키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양이는 그냥 사납고 길들이기 어려운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고양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많이 생기고 더불어 길거리에는 개 대신에 고양이가 돌아다녔다. 우연히 지인이 키우는 고양이를 몇 번 돌볼 기회가 있었다. 날씬한 일반 고양이가 아닌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개냥이였던 그 고양이는 발로 지긋이 밟아도 귀찮다는 듯 누워있고 오라고 할 때는 들은척은 하지 않으면서도 지나가면서 다리를 한번 툭 치며 애정을 표시했다. 늘 주인만을 바라보며 애정을 갈구하는 개와 달리 주인을 귀찮게 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한껏 늘어져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이런 매력이 있어서 고양이를 키우는 건가 싶었다. 이런 나의 불확실한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완성해 준 책이 바로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였다.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라는 제목을 보고 고양이가 화자가 되어 직접 인간과의 생활에 대해서 말하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스웨덴의 노교수가 황혼에 우연히 만나게 된 고양이와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잔잔한 에세이이자, 신경의학과 교수답게 고양이에 대한 나름 체계적인 이론과 관찰 결과를 말하고 있다. 노부부는 완벽한 자신들만의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활 속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찾아왔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어느새 고양이는 '나비'라는 이름을 가지고 노부부에게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얘가 대체 어딜 갔지? 무슨 일 생겼나? 실망해서 우리는 버렸나? 우리에게, 아니 그보다는 우리 마당과 집에 고양이가 묶인 게 아니라 우리가 나비에게 묶여버렸다.

책에는 특별히 사건이나 놀랄만한 반전같은 것은 없다. 노교수가 고양이와 함께 하면서 느낀 점과 고양이에 대해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예전에 고양이와는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처럼 박사도 역시 고양이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 역시 공존의 한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바로 이 순간에 나비는 내 컴퓨터에서 50센티미터 떨어진 자기 바구니에 누워있다. 머리는 수건 깊이 파묻고 있다. 꼬리는 바구니 가장자리 위로 몇 센티 걸려있다. 곁에 있는 그 무엇도 내가 글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주택단지인 우리 동네에도 길고양이들이 많다. 가끔 참치캔이 있으면 마당에 놔두곤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머물 의사가 없는가 보다. 우리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그렇게 예뻐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걸까? 담벼락 위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를 워이~놀라게 해서 날 싫어하는 걸까?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를 읽고 보니 우리 집은 자기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 게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박사에게 '나비'가 왔듯이 내게도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왔으면 좋겠다. 고양이는 박사가 자신의 기분을 모른다고 하지만 노박사는 어느 누구 보다 섬세하게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은 고양이대백과 사전이 아니다. 고양이에 대한 A to Z를 알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우연히 내 삶 안에 고양이가 한 발을 내딛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최소한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 노부부가 고양이 '나비'를 한 발짝 떨어져 기다리고, 보살피고, 함께 공유하는 것처럼 만약에 내게도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 다시 한번 더 이 책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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