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포토스의 배 - 제14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쓰무라 기쿠코 지음, 김선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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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포토스가 어떤 식물인지 검색해 봤다. 원래 식물의 종류를 잘 모르지만 책 표지에서 보이는 라임포토스는 어디선가 본듯한 식물이었다. 아, 이 화초 이름이 라임포토스였구나.
알쏭달쏭한 기억력이 맞았다. 예전에 우리 집에도 있었던 밋밋한 화초였다.

라임포토스. 눈에 띄지 않고 너무나도 평범한 식물.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 없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열심히 지켜내고 있는 화초. 작가는 라임포토스의 이런 특징에 빗대어 지독한 현실 속에서 살고있는 29살의 평범한 두 명의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라임포토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토스였다. 여러 가지 상징을 가지고 있지만 포토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갈망' 을 의미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갈망,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나는 <라임포토스의 배>를 읽으면서 짙푸른 식물인 라임포스트가 아니라 포토스, 즉 갈망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라임포토스의 배>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세계 일주 크루스 여행을 꿈꾸며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데 보내고 극단적으로 절약하며 살아가는 나가세에 관한 이야기인 '라임포토스의 배'와 힘든 회사생활과 동료들 사이의 따돌림을 견디지만 결국엔 사표를 내고 나오는 쓰가와가 주인공인 '12월의 창가'이다. 서로 다른 짧은 단편들로 보이지만 두 편을 모두 다 읽고 나면 '12월의 창가'의 쓰가와가 '라임포토스의 배'의 나가세는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갈망. 내가 느꼈던 것은 그녀들의 열망이었다. 1년 연봉과 맞먹는 세계 일주를 위해서 쉼 없이 일하는 나가세와 다른 회사를 꿈꾸는 쓰가와는 가지지 못한 대상을 동경한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20대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은 예전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일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회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음식물과 전기, 가스와 같은 에너지를 고만고만하게 사들여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신의 불안한 삶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이.

 

<라임포토스의 배>는 가벼운 단편 소설로만 읽어버리고 덮기엔 아쉬운 책이다. 분명 유쾌하게 읽어나갈 수는 없다. 그녀들의 무거운 일상을 이야기하지만 힘든 삶에 잠식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장소를 향해서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걸어나가고 있다. 마치 힘든 당신들도 이렇게 살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소설이지만 <라임포토스의 배>는 한국에 살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성, 직장인인 우리들에게 힘을 내라고 한다.

나가세와 쓰가와는 예전의 나의 모습이었고 우리의 그때이다. <라임포토스의 배>를 읽으면서 자주 책을 덮고 생각했다. 세계 일주 크루즈를 원하며 독하게 절약하는 나가세의 모습에서 가고 싶은 여행을 위해 기를 쓰고 출근했던 나의 모습이 보였고, 회사 내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쓰가와의 이야기에서 이직 후 적응하지 못했던 내가 있었다. 아마 평범한 이 시대의 여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녀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한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겨내서 현재까지 잘 살고 있으니까 나보다 더 강한 책 속의 그녀들도 잘 이겨내며 살아갈 것이다. 삶의 한 고비를 넘긴 사람이라면 피식 웃으며 두 편의 소설을 읽을 것이다. 현재 그녀들과 비슷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라임포토스의 배>를 통해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두드려 맞고 상처가 아물면서 지독한 이 현실에 적응해 가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우리와 책 안의 그녀들은 힘든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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