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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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을 읽으며 나의 기억력이 좋지 않음을 감사했다. 아마 그때의 나는 키친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작고 얇은 소설집. 요시모토 바나나의 3가지 단편으로 구성된 키친은 일본 소설 특유의 폴폴 날아가는 깃털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마냥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 안에 깊게 깔려있는 죽음. 그리고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드러나지 않는 처연함이 짙게 배어있는 책이다. 분명 예전에 나는 유행처럼 다 읽으니 키친을 읽었을 것이고 나름 유명 일본 소설을 읽었다고 뿌듯해하며 다녔을 것이다.

나는 늘 <할머니가 죽는 게> 무서웠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이해는 하겠지만 자신이 겪어보지 못하면 그 단어가 주는 통증을 알 수 없다. 다시 읽어본 키친은 내가 죽음 뒤에 느꼈었던 감정들의 일부분과 비슷하게 겹쳐 있었다.

BEST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늘 카뮈의 이방인을 말한다. 죽음을 겪은 후 처음 겪는 그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작정 외면만 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이방인을 통해서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 이방인이 아닌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었다면 나는 이방인과 또 다른 방법으로 그 감정들을 이겨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항상 죽음이 무섭다. 정확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 그 뒤에 겪게 될 감정들이 두렵다.

키친은 죽음 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위로하며 죽음 후를 견디고 이겨내는지에 대한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할머니를 읽은 사쿠라이 마카게는 다나베 유이치와 그의 아버지 겸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위로받는다. 그리고 유이치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이번에는 반대로 마카게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다가간다. 하지만 그녀와 그의 위로는 다른다. 마카게를 위로하는 방식은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었고 반대로 그녀는 유이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보듬어 준다. 같은 아픔을 가진 둘만의 교류는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게 이겨나가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에리코 씨는 이제 없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키친은 전혀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다. 왜 나는 이 책을 쉽게 읽히는 일본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역시 삶은, 시간은, 쌓여가는 켜에 따라 이해하는 깊이가 다르다. 주말 오후 거실에서 읽기에 무척 힘든 책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녀의 짧지만 묵직한 문장들은 참 슬펐다.

방은 따뜻하고, 끓는 물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퍼진다. 나는 도착 시각과 몇 번 홈인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서로를 통해 치유해 나가는 모습에 나도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는 또 한 발짝 걸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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