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꽤 오랫동안 물건을 쌓아놓았던 방을 치우며 예전에 사용했던 노트를 발견했다. 끊임없이 적혀있는 계획들, 실천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의 끄적임들이 가득했다. 나는 지금과 그때가 다르지 않았다. 늘 계획하고 결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실천하지 않고 넘어가버린다.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정말 문제다.
<결심중독>은 나를 위한 책인 것 같았다. 난 정말 완. 벽. 하게 계획을 잘 세운다. 학창시절에 내가 세운 계획표로 친구들이 공부해서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무척 좋은 점수를 받은 적도 있다. 정작 고심하며 계획을 세운 나는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수많은 과거 행동들의 결과라고 하는데 역시 지금의 나도 결심만 하고 끝나버린 수없이 많은 계획들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문제점도 알고 해결 방법도 안다. 하지만 정작 그 조차도 고쳐봐야지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끝없이 계속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심리 중독 중 가장 무서운 병이라는 <결심중독>의 원인을 알고 이번에는 제대로 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비장한 각오로 읽기 시작했다. TV나 라디오에서 워낙 재미있는 심리학자로 유명한 최창호 박사님의 책답게 <결심중독>은 366페이지로 꽤 두꺼운 편이지만 막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밑줄을 치면서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 <결심중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오직 결심 중독만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책을 읽은 후에 '세상의 모든 재미있고 쉬운 심리학으로 살펴본 나'와 같은 부제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종류의 중독 중 결심 중독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알려주지만 심리학 원리, 재미있는 심리학 용어와 체크리스트를 통해서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페이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문장 한문장이 나만을 위해 적어놓은 것 같았다. 왜 내가 그렇게 끊임없이 결심을 하고 실패를 하는지를 첫 페이지부터 직접적이고 단호하게 말해준다. 결심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강박적 결심중독증. 작가는 결심을 반복하는 원인을 뇌과학적인 특성과 심리학,행동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알려준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많은 밑줄을 그었다.무슨 계획이든 '내일부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 실패한다. 결심 중독에 걸리는 이유도 '내일이라는 마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인 것이다. 따로 메모한 것 중에 '미루는 습관을 갖게 되는 3가지 이유'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미루는 습관을 갖게 되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에 회피하는 것이다. 이가 아픈데도 자꾸 미루는 이유가 치료할 때 아프거나 치료비가 비싸서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구체적이지 않은 목표 때문이다. 목표가 막연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 미루게 된다. 세 번째는 막판까지 몰리면 자신의 잠재력이 극대화되어 결국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특히 나의 잠재력에 대한 망상이라는 세 번째 이유를 읽으니 가슴이 뜨끔했다. 또한 결심 중독에 빠지는 원인을 나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 생겨나기도 하는데 상대방을 좌절하게 만드는 말을 하는 사람들, 지치게 만드는 에너지 뱀파이어라는 결심 달성의 훼방꾼의 유형을 분류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결심만 반복하는 이유중의 하나를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와서 분별 능력이 마비되고 불안감과 책임 전가와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런 현대병을 정보피로증후군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우선 정보검색을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다이어트 정보가 나오고 그 정보 검색만으로 우리는 이미 지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결심중독>에는 다양한 체크리스트가 있다. 나의 결심 중독 수준, 좌뇌형/우뇌형 체크 및 결심 중독 유형을 알아 볼 수 있는데 나는 우뇌형이었고 결심 중독의 7가지 유형 중 아드레날린 과다분비형(과대망상형)이었다. 길지 않은 문항이었지만 내가 어떤 결심 중독자인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각 유형별 특징과 유형에 따른 맞춤형 해결 방법도 제시하는데 한두 가지가 아닌 7가지의 유형으로 디테일 하게 분류해서 자신의 결심 중독이 어떤 유형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흥분하기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작은 기대를 차분하게 실천하도록 기대치를 조절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결심중독>의 조언대로 해야할 일들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결심중독>은 결심만 반복하는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 당신이 결심을 반복하는지 과학적, 심리학적인 원인과 함께 조곤조곤 설명해 주고 어떻게 결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 또한 알려주는 친절한 책이다. 나는 <결심중독>을 통해서 끊임없이 계획과 결심을 반복하는 이유, 어떤 결심 중독 유형의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다이어리나 노트의 첫 페이지에 계획을 적고 찢는 행동은 이제 멈출 수 있겠지. 아침에 흥분하며 하루의 계획을 세우지만 저녁에는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지, 내일 다시 새마음으로 시작해야지라는 생각은 이제 그만할 수 있겠지. 나와 같은 사람들, 결심의 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과대망상형 결심 중독자인 나는~^^ 여유롭게 커피 한잔하면서 조금 더 디테일한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