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현기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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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이다. 노작가의 책은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듯한 회색이었다. 지금 내 마음과 같아서 일까?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의 표지와 눈물 나게 담담한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개인적인 감정이 어떤 책보다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에세이를 읽노라면 너무 쉽게 작가의 감정에 동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이 바로 또 에세이라서 쉽게 놓을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다. 꽤 오랜만에 읽었다. 요즘처럼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하루에 수백 번씩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할 때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지금 나에게 정확히 필요한 책이구나.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의 첫 장에는 작가의 사진이 흑백으로 들어있다. 사진 한 장만으로 이 책의 모든 것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노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음미하듯 이야기한다. 그가 겪어왔던 이야기,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 그리고 앞으로 올 것들에게 관해서 조용히 하지만 깊이 있게 말해주고 있다.

 

등단한지 41년 된 작가의 12년 만의 산문집이다. 총 37편의 산문으로 제주도가 고향인 작가의 4.3항쟁에 대한 기억을 추억하고 늙어감과 죽음을 겪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다.

가볍고 흔한 에세이가 아니다. 41년 소설가의 내공이 그대로 드러난 깊이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까지 꾹꾹 눌러 읽어야 할 무게가 들어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척 슬펐다. 작가의 이야기가 비단 그 만이 겪고 느끼는 감정들이 아니라서 함께 슬펐지만 동시에 그의 초연함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슬픔에는 여러 가지 슬픔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한 가지 슬픔, 즉 자신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다. 겨울에 얼어 죽은 새를 슬퍼하는 것도, 남의 슬픔에 눈물짓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가멸의 존재인 자신에 대한 연민의 표현이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산문집이다. 묵직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책이다. 따라 적고 싶은 담백한 문장들 뿐만 아니라 휘리릭 허투루 읽을 수 없는 인생의 깊이가 담겨 있다. 겨울이 올 때 다시 한번 꺼내읽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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