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2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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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는 굉장히 디테일한 책입니다.
그래서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불편함을 느낀 것 같아요. 소설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읽기가 쉽지 않다는 글을 봐서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했는데 역시 만만찮은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야기의 재미가 톡톡하고 소설 한 편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만만치 않은 두께로 두 권으로 구성된 장편 소설, 루미너리스는 28세의 젊은 작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47년 맨부커상 역사상 최연소 수상 작가라고 하는데 과연 천재 작가라고 불릴만한 것 같습니다.
빈틈없는 이야기 구성, 각각의 특징 있는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
한순간도 눈을 뗄 수없게 만드는 대화를 읽어나가면서 두 번째 작품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에 감탄했습니다. 24세에 쓴 데뷔작인 '리허설'이라는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더군요.

 금을 찾기 위해 뉴질랜드에 도착한 무디라는 남자가 호텔 흡연실에서 우연히 어떤 사건에 관해 듣게 되면서 루미너리스의 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현재와, 과거뿐만 아니라 12명의 남자와 그 이상의 사람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긴 시간과 많은 장소들, 빈틈없이 연결된 등장인물의 관계들이 루미너리스가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하지만 초반의 복잡한 관계들과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속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작은 뉴질랜드의 한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 안에는 작가가 치밀하게 숨겨놓은 수많은 사건들이 숨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살인 사건에 관해 12명의 남자들이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추리소설의 경우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의 과거와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앞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되돌아가고 각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를 펼쳐놓는 방식이라 자칫 지루할 수도 있고 헷갈리기도 쉽습니다. 루미너리스 역시 하나의 살인사건에 관련된 얽히고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라서 1권의 중반 정도까지는 읽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에 무디가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말해주기 때문에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한 방에 모든 이야기가 정리될 겁니다.

 루미너리스라는 단어는 점성술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인 해와 달을 뜻합니다. 제목처럼 모든 이야기들이 천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입니다. 주요 인물 12명은 황도 12궁을 대표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행성에 속해서 12 별자리를 넘나듭니다. 각 캐릭터가 황도 12궁의 특성과 정확하게 들어맞는다고 하는데 점성술이라는 것 자체가 서양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온 것이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꽤 낯선 것이죠. 그래서 처음에는 각 별자리의 특성을 컴퓨터에 띄어놓고 인물들의 별자리를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별자리니 점성술이니 이런 건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추리소설로만 루미너리스를 읽었습니다. 황도 12궁의 특성을 안다면 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 되겠지만 알지 못해도 루미너리스의 꽉 찬 즐거움을 알기엔 문제가 없으니까 스토리 탄탄한 추리소설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물론 루미너리스는 쉬운 소설은 아닙니다. 두께도 두껍지만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읽어야만 뒷장으로 넘어갈 수 있는 책입니다.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저는 제대로 꼼꼼하고 빈틈없는 루미너리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대로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만큼 설명이나 대사들이 빈틈없이 세심했습니다. 하나의 표현, 대사 하나 놓치면 그 뒤에 연결되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끔 만들었습니다. 각 인물들의 감정 표현이나 그들의 복잡한 관계 또한 굉장히 방대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글의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좋았던 루미너리스였지만 단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었는데요, 저는 두 권에 걸친 탄탄하고 엄청난 이야기를 마지막에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결말을 너무 빨리 알려줬을뿐더러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에 비해서 뒷심이 부족한 것 같고 뭔가 다른게 있을 것 같은 찜찜함과 아쉬움을 가지고 책을 덮었습니다.

읽기 쉽지 않아서 더 집중해서 읽게 된 루미너리스는 가볍게 몇 시간 만에 휘리릭 읽어 나가는 소설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매력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늘어지는 지루함이 아니라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하는 긴장된 피로에서 오는 지루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야기를 팍~펼쳤다가 확~끌어올리는 작가의 솜씨가 대단한 작품입니다. 엄청난 반전이 있거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꽉 찬 이야기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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