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지하철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의 장안이 어디인지 궁금해 읽던 책을 멈추고 검색창을 켰다. '장안'이라는 단어를 넣으니 가장 먼저 '당나라의 서울이 장안(현재의 서안)이다'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현재의 서안이라는 글귀를 읽으니 왠지 <용과 지하철>의 이야기가 묘하게 납득되는 것 같았다. 분명 <용과 지하철>은 판타지이지만 고대 중국 장안이라는 도시에 일어난 일이라는 배경은 단지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에 실제로 있었을 것만 같았다. 병마용갱이 발굴된 곳이자 여전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진시황제의 유물이 잠들어 있는 곳인 서안. 마보융 작가가 말하는 장안은 이름만 빌려 쓴 허구의 도시일 것이다. 하지만 신비함을 간직한 도시인 서안의 옛 이름을 배경으로 쓰인 <용과 지하철>은 이미 내게 단순한 판타지 소설 이상이 되었다.

 

중국판 미드 24시를 보는 듯 박진감 넘치는 <장안 24시>를 통해 마보융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1권을 읽고 난 후 단숨에 2권까지 읽게 만들고 중국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깨어버린 마보융 작가가 이번에는 장안을 배경으로 <장안 24시>와 전혀 다른 판타지 소설 <용과 지하철>을 들고 나타났다.

 

​<용과 지하철>은 소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표지의 독특함부터 말하고 싶다. 개성 있고 멋진 책 표지들이 많지만 한눈에 쏙 들어오는 디자인은 없었다. 하지만 <용과 지하철>은 책을 펼치기 전에 먼저 손으로 표지 그림은 한참이나 만져봤다. 금방이라도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용과 수염을 잡고 있는 소년이 톡 떨어질 것만 같았다. 페이터 아트로 만든 <용과 지하철>은 최근에 접해 본 표지 중에 최고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용과 지하철>은 입체감 있고 몽환적인 느낌의 페이터 아트 표지와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장안 24시>은 두 권에 걸친 장편 소설이지만 <용과 지하철>은 중단편 소설로 책 안에는 <용과 지하철>외에 '고북구 출입금지 구역', '고고물리학', '대접근대이동' 이라는 3편의 단편 소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전의 책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정신없이 빠져나왔다면 이번 <용과 지하철>은 '용과 지하철'과 그 속에 수록된 단편 소설을 통해 마보융이라는 작가의 다양한 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기회였다.

 

​<용과 지하철>은 신화와 과학이 함께 어우러진 판타지 소설이다. 고대 중국 도시 장안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지하도에는 현대의 지하철 개념으로 용이 사람들을 수송하고 있다. 이런 용들을 책에서는 지하룡이라고 부른다. 전설의 동물인 용이 지하철처럼 사람들의 교통수단이 된다는 배경이 무척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장안시의 지하도를 다니는 지하룡들은 용문절에 잉어에서 용이 되는 순간 잡아 지하룡으로 이용된다. 용들은 사람들에게 잡히는 순간 역린이 제거되고, 오랫동안 쌓인 분노의 역린 속에서 태어난 얼룡들로 인해 장안시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런 혼란을 없앨 사람은 장안시 장군의 어린 아들 나타와 나타와 우정을 쌓은 황금룡 막대사탕이다. 과연 용과 소년은 초대형 얼룡으로 부터 장안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연기로 만들어진 얼룡들을 잡기 위해 부적이 사용된다. 매년 물길을 거슬러 용문을 뛰어넘는 황하의 잉어들이 용이 되는 순간, 사람들에게 잡혀 평생을 장안시 지하에서 지하룡으로 살다가 죽어가는 용. <용과 지하철>은 하늘에서부터 지하까지 독특한 설정의 판타지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판타지 사이에는 용들을 잡아 지하에 가둬둔 인간들의 욕심, 백성들의 목숨보다 권력 놀이에 바쁜 지배층, 순수함으로 용과 친구가 되는 소년 그리고 4% 정도의 로맨스가 들어있다.

 

​<장안 24시>가 빠른 호흡과 반전의 매력을 가졌다면 <용과 지하철>은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장안 24시>를 읽고 <용과 지하철>을 읽으니 금방 이야기가 끝나 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했지만 <용과 지하철>만큼이나 개성 있는 마보융의 판타지 단편 3편이 남아 있으니 느긋하게 마보융의 판타지 세계를 즐겨보길 바란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는 순간, 진짜 용이 지하도에서 긴 수염을 날리며 들어와 플랫폼에 정차하고 사람들이 용의 비늘 사이로 올라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일상의 한순간을 판타지로 만들어 주는 <용과 지하철> 덕분에 한동안 지하철 타는 게 무척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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