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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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짐작 할 수 없었다. 김민섭 작가는 언제나 씁쓸한 '지금'의 모습들을 명쾌하게 들려주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감을 안고 책을 들었다. <훈의 시대>를 펼치고 곧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들려주는 훈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훈의 시대>를 통해 언어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훈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를 사용했을 뿐 책이 하는 이야기는 나도, 당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냥 그렇게 의심없이 훈속에서 살고 있었기에 <훈의 시대>를 읽으며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의 언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훈의 시대>를 읽으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구절이 떠 올랐다. 이 책이 언론이나 정보 전달의 무서움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가만히 읽어보면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사실들을 들려준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에 당연한 듯 깊이 새겨진 훈들에 대한 이야기. 폭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펜을 들었던 사람들은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하다. 하지만 훈은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나는 <훈의 시대>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훈으로 가득한 세상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훈'이란 무엇일까? <훈의 시대>에서 말하는 훈은 한자로 가르칠 훈(訓)을 말한다. 한 단어만 이야기해서 혹시 이 단어가 추상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훈은 단어 그대로 우리가 쉽게 쓰는 훈계, 훈육, 가훈, 교훈등에 사용하는 바로 그 훈이다. <훈의 시대>에서 작가가 말하는 훈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훈'은 1)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언어이고, 2)지배계급이 생산, 해석, 유통하는 권력의 언어이고, 3)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욕망의 언어이다.


문자가 소수만의 특권이자 권력의 원천이었을 때가 있었다.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처벌등의 수단을 통한 몸으로 기억되는 훈만을 사용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문자를 알게 되면서 부터 훈은 이전의 직접적인 통제때 보다 더욱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 언어의 영향력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광범위했고 효과도 뛰어났다.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이건 당시의 지배적인 훈이 있었고 언제나 새로운 훈들이 등장했다. 작가의 말처럼 시대의 훈은 그 시대의 야만과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훈의 시대>에서는 학교, 회사 그리고 개인의 훈에 대해서 들려준다. 과거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고, 현재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대표적인 두 공간에 그토록 많은 훈들이 있었다는게 놀라웠다. 의심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주류에 따라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훈의 시대>를 읽으며 나 역시도 습관처럼 반복되는 시대의 훈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의 훈'에서는 모든 학교에 있는 교훈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었데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교가 역시 누군가가 들려주면 어렴풋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수없이 불러댔던 그 교과가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의 훈에서 나오는 수많은 교훈과 교가들에 그렇게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다녔던 여중과 여고의 교가와 교훈이 궁금해 책을 읽다 인터넷으로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책에서 말하는 극단적인 단어가 없는 교가 가사를 보며 왠지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남성이 군복무라는 희생을 도맡고 있으니까 어디에서든 주체가 되어야 하고 여성은 주변부로 밀려나도 괜찮다'는 논리는 많은 남성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군복무가 그러한 당위성을 부여하느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러한 욕망이 학교에서부터 이처럼 구체화되고 있는 데는 문제가 있다.


<훈의 시대>가 단지 특정 집단에서 많이 쓰는 훈에 대해 찾아보고 정리해서 들려주는 책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당연한 듯 머리 속에 새겨진 예전의 훈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갈등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 이야기한다.


학교와 회사 중 어느 쪽이 훈을 통해 더 쉽게 통제할 수 있을까? 나는 학교보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집단들이 훈을 통해 지배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한다. 어느 회사든 사훈이 있다. 단지 글로 써 있지 않아 많은 사원들이 자신의 회사에 사훈이 있는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모를때가 많다. 하지만 글로 적어놓지 않더라도 나는 회사의 분위기가 사훈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에 속하며 우리는 일원이 되기 위해 그 곳의 색깔로 조금씩 변하려고 한다. 인식하지 못할 뿐, 그 회사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어느 순간 나에게도 느껴진다면 회사의 훈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훈의 시대>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훈은 바로 '개인의 훈'이였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글을 통해 조목조목 읽어보니 다시금 내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브랜드 아파트로 가야한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 훈에 대한 이야기. 저마다의 건설사가 아파트 브랜드를 만들어 냈고 끝없는 TV광고를 통해 자사의 브랜드를 개인들이 쟁취해야만 할 훈으로 정착시켰다.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다. 어느새 우리는 아파트가 자신의 품격을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랜드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그 곳에 살면 정말로 자신들이 더욱 특별하게 되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비단 브랜드라는 이름뿐이겠는가. 경비원에 대한 갑질, 임대아파트와 구분하기 위한 가림막 설치, 택배 차량의 지상 집입 금지등 '우리'만의 특별한 공간을 지키지 위해 참 많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고, 여전히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공간들도 많다. 요점은 내가 특별하면 너 역시 특별하고 우리 역시 특별하다는 사실을 모두 인식해야 된다는 것이다. 공간의 주인은 폐쇄된 공간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로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훈들이 남아 이 시대와 여전히 동시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야만의 언어들이,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언어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은 몹시 모욕적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이제 폐기하고 스스로의 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세계 곳곳으로 떠나고 오는 항공기와 훈련 중인 전투기가 지나다니는 곳이다. 가끔 놀러오는 친구들은 나에겐 들리지도 않는 조용한 민항기 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한다. 처음에는 나 역시도 그랬다. 비행기가 지나갈때 마다 TV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전투기가 빠르게 지나가면 집이 흔들리기도 해서 과연 여기에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나며 이제는 민항기 소리는 들리지도 않으며 전투기가 뜨면 '야간 훈련인가' 하고 만다. 시끄럽지만 그러려니 하고 내가 사는 공간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훈의 시대>는 앞에서 말한 언어가 가진 힘과 함께 익숙함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당신의 훈, 회사의 훈, 학교의 훈에 대해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답하지 못할 뿐 우리는 수많은 훈을 듣고 듣고 들으며 살아왔다. 마치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에 익숙해져 조용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때로는 버려야할 훈, 편협한 훈, 욕망의 훈에 익숙해져 그것이 잘못된 훈임을 판단하지 못한채 나의 의견인양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훈의 시대>를 통해 훈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니 이제 찾아보자. 당신도 모른채 따라가고 있었던 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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