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 삶, 사랑, 죽음, 그 물음 앞에 서다
경요 지음, 문희정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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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었다.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는 자신이 나이 들어 죽을 것이라는 것. 죽을 때까지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마지막 눈을 감을 때는 가족들의 따뜻한 눈물과 배웅 속에서 세상을 떠날 거라는 확신. 적어도 자신만은 그렇게 죽을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후에 치매가 걸리거나, 몸을 마음대로 못 움직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잘 죽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요즘엔 존엄사나 웰다잉에 관한 책이나 다큐가 종종 나오고 있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무척 불편해한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하루씩 줄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유한한 삶이기에 우리는 젊음을 사랑하고 열정을 불태우며, 정말 열심히 산다. 20대에는 30대를 준비하고, 30대에서는 40대를 계획한다. 하지만 노년에 맞이하는 늙음이 주는 병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계획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


얼마 전에 존엄사에 관한 다큐를 봤다. 대만은 우리보다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앞서가고 빠르게 준비하고 있는데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를 읽으며 다큐에서 봤던 장면들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경요는 '황제의 딸'이라는 드라마로 알게 된 작가이다. 그녀의 드라마에 정신없이 빠졌고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가 경요의 에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무척 읽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인지 몰랐다. 노년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에 대한 에세이겠거니 했었는데 의외로 존엄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더구나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과 웰다잉의 권리에 대한 글이라니.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한 줄 비위관 이야기'에서는 존엄사법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남편의 치매를 알게 되고,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을 간호하는 과정 그리고 남편이 원하지 않은 비위관 삽입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잃어버린 남편을 바라보는 경요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 2부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어'에서는 남편과 경요와의 일상적이지만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을 들려준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존엄사 법에 찬성하는 작가 경요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웰다잉을 지지한다. 온갖 주사기 줄을 주렁주렁 달며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짧은 숨만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노인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페이스북에 올려 엄청난 반응을 겪었던 글을 다시 손본 것도 있지만 이 책의 대부분은 미발표작이다. 남편의 치매 과정을 겪으며 느꼈던 고통과 절망을 그대로 담았다.


2017년 3월 12일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내는 공개서신'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아플 때와 사후에 해줬으면 하는 몇 가지 당부를 한다. 그녀의 가장 큰 바람은 몸뚱이만 억지로 붙들고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와병 노인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갑자기 효자 증후군에 걸려 대불효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것이자 필연적으로 닥치는 일이지. 반대로 '생명'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은 항상 '우연'이야. ~ 죽음은 네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야!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탄생'에만 기뻐하고 '죽음'에는 슬퍼하는 걸까? 긍정적인 에너지로 죽음 맞이할 수 없는 걸까?


경요 어머니 역시 돌아가시기 전 2년 동안 치매를 앓으셨다. 치매 말기까지는 이르지 않은 채 돌아가셨지만 2년 동안의 고통은 경요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었다. 조금씩 생명과 즐거움을 잃게 만드는 질병인 치매. 중증에 이르면 환자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생명의 존엄, 삶의 품격도 상실한다.

 

경요가 어머니 병간호 후 관심을 가진 문제는 바로 현재 치매 인구와 현재 와병 노인의 숫자였다. 급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는 타이완의 현실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갈수록 치매와 노인성 장애 인구가 증가한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에세이이기 전에 노인문제에 대해 보다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었다.


책 속의 많은 구절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다음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다.

 

"무슨 인생이 이래? 세상에 태어나자마다 배워야 할 것 천지지. 말하는 것도 배워야 하고 걷는 것도 배워야 하고, 그 뒤로는 일생을 전력투구해야 해. 학생 때 죽을 둥 살 둥, 취업할 때 죽을 둥 살 둥, 연애와 결혼도 죽을 둥 살 둥, 아이가 생기면 죽을 둥 살 둥, 퇴직해도 죽을 둥 살 둥, 그렇게 평생을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은 것이 다 늙어서 '잊어버리기' 위한 거였나?'


경요 작가의 일기를 읽는 듯했다. 남편의 치매를 알고부터 한 단계 한 단계 고통이 더해지는 과정은 담담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에 슬픔이 진하게 묻어있다. 그녀가 책을 통해 하는 말은 사랑하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치매나 노인성 질병에 걸릴 경우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비위관 삽입을 두고 가족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적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녀의 심정이 어떤지 아주 약간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말은 침대 위에 누운 채 숨을 쉬고 심장만 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말은 무척이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세상을 즐길 수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바람과 비의 소리를 들으며, 맛있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영화와 각종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생과 사는 본래 쌍둥이 형제와 같아서,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것이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것은 아름다운 결말이어야 한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에세이였다. 존엄사나 웰다잉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이고, 그토록 싫어하는 삽입관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남편을 지켜보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경요의 글답게 묵직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그녀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한없이 슬픔에만 빠지지 않는다.

 

이 책은 죽음 앞에서 존엄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경요가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답한다. 잘 죽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준비가 여전히 서툴다. 나이가 들면서 멋지게 사는 삶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에 대한 고민이 늘어간다. 부모님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나에게 내 생명 유지의 선택권이 없을 때 나는 어떻게 될까? 등 끝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녀는 책의 말미에 독자에게 묻는다. 생각해 보라. 당신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싶은가? 인위적으로? 빨리? 천천히? 생각해 보시라. 진지하게 생각해 보셔야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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