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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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희란의 소설집 <영의 기원> 속에는 8가지의 죽음이 담겨있다. 죽음으로 시작되는 책은 죽음으로 절정을 맞고,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을 가볍고 위트 있게 풀어내는 책도 있지만 <영의 기원>은 다소 무겁고 많은 의미들을 모호하게 이야기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작가를 통해 창조되는 죽음의 독특함이 궁금하다면 천희란의 소설집 <영의 기원>은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 생각한다. 

 

<영의 기원>은 친절하지 않은 책이다. 아마 그녀의 깊이 모를 글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책을 덮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앞장을 돌아가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인지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한, 특히 한국 젊은 작가들의 독특한 단편소설을 좋아하고 소설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나다면 <영의 기원>은 읽는 즐거움도 더불어 선사해 줄 것이다. 

 

단편소설을 좋아하지만 나에게 <영의 기원>은 50%의 즐거움이었다. 솔직히 8편 중 4편만 흥미롭게 읽었고 나머지 소설들은 어렴풋하게만 이해할 뿐 정확하게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럼에도 <영의 기원>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던 이유는 바로 죽음을 소재로 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관통하는 이야기들, 그녀의 책을 통해 처음 소개되는 소설들은 마치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였고, 언젠가는 꼭 일어날 것만 같은 예언과도 같았다. 

 

사람들이 갑자기 죽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르는 혼란한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자살여행을 떠나는 무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창백한 무영의 정원'. 종말이 올 거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평범한 시대였다면 만나지 않았을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만났다. 종말이 온 건가? 의문을 가지며 '예언자들'은 끝난다. '영의 기원'은 영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영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영이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더더욱 모호해 짐을 느낀다. 짧은 반전 소설 같았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두 여자가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의문과 이유를 묘사한다. '신앙의 계보'와 '경멸'에 이은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는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8편의 이야기 중 가장 현실 같아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경계에 아슬아슬 서 있는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은 앞선 '창백한 무영의 정원',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와 더불어 <영의 기원>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죽음을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구나. <영의 기원>을 읽으며 가끔은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고, 가끔은 소설 속의 감정들을 금방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재능이 늘 놀라웠다.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이다. 세월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예전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이해되는 책들이 있다. <영의 기원>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 중의 하나는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야 되겠구나'였다. 2018년에 읽었던 <영의 기원> 속 죽음들이 2019년, 2020년에는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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