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아서 할게요
박은지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겐 두려움이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할 때 나의 가치관이나 시각을 최대한 적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다듬어지지 않고 마구 쏟아져 쓰인 나의 글은 투박하고 강해서 마치 당장 어디 집회라도 나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제가 알아야 할게요>같은 에세이는 내게 동경의 대상이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법한 고민들, 두 번쯤은 분노했을 상황들에 자신의 생각을 잘 녹여 강약에 맞게 풀어내는 에세이는 써보고 싶지만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지하철과 기차는 책 읽기에 완벽한 교통수단이다. 오랜만에 부산에 갈 일이 있어 <제가 알아서 할게요>를 가방에 챙겨갔다. 책을 읽으며 부산이 아니라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속 시원하게 날려주는 작가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조금 더 읽어보고 싶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의 부제는 '세상의 오지랖에 맞서 진짜 나로 살아가는 법'이다. 맞다, 세상엔 참 주변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애정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할 시기라는 것에서 멀어진지 오래된 미혼인 나는 그런 오지랖들을 더 자주 겪었다. 그래서 <제가 알아서 할게요>를 읽는 내내 속이 시원했다. 물론 그녀는 일찍 결혼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겪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왠지 통쾌한 기분을 들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은 크게 3가지의 주제로 나눠져 있다. '어른'이라는 기준에 맞추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제 행복은 제가 고를게요'를 시작으로 일과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불편함에 관한 '이런 칭찬은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결혼에 대한 '결혼에 조언은 필요 없어요.'까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자라면 누구나 몇 번은 듣고 상처받았을 친절한 조언들에 대해 말한다.

 

 


 

"현실적으로 글쎄?" 왜 그들은 남의 삶에 대한 불확실함을 확인시키고 불안감을 조성해야 속이 시원할 걸까? 그들이 정말 다른 사람의 미래를 걱정해서 말을 꺼내는 것 같지는 않다. ~ 우린 다들 한정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자신이 겪은 작은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세상을 먼저 겪어본 사람들의 조언이 늘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를 읽으며 그렇지, 그렇지,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슬그머니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생각이 모든 이들의 생각이 아니기에 누군가는 책 속의 구절이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직 네가 세상을 덜 살아봐서 뭘 모른다며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겠구다 싶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박은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관한 에세이이다.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그녀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의 3가지 주제 중 결혼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녀 역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라서 그런 걸까? 결혼에 대한 글을 읽으니 친구와 언니, 동생들에게서 끊임없이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며느리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당차게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의 글을, 며칠에 한 번씩 시댁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받는 내 주변의 많은 며느리들이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작가의 짧은 글 하나하나마다 내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걸 참았다. 정신없이 쓰다 보면 책 내용보다 더 많은 내 생각이 때론 공감으로, 때론 분노가 되어 쓰이고 있어 리뷰를 쓰면서 한 번씩 멈추고 다시 읽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는 늘 내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충고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고생하시며 키워준 우리 부모님 빼고 나 사는 걸로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작가의 말처럼 조금 편하게 살려면 '싸가지'가 필요하다. 나를 싸가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 사람은 내가 아니고, 내 삶을 그들이 살아주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욕을 좀 먹을지언정, '남들이 좀 이상하게 보면 어때?라는 생각이 나를 홀가분하게 한다면 그걸로 됐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굳이 내 삶의 엑스트라들에까지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