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명작 산책 - 내 인생을 살찌운 행복한 책읽기
이미령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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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는 책은 언제나 놀랍다. 알지 못했던 좋은 책을 만나는 즐거움, 같은 책을 읽었지만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들이 가득하다. 책 속의 책들은 아주 오래된 서점 한구석에 자리 잡고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책 같았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것 같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던, 어렴풋한 느낌의 책이었다.

<이미령의 명작산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빛이 바래 누렇게 변해버린 책들이 가득한 어느 서점의 책장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빼낸 한 권의 책이 한참 동안 서점을 벗어날 수 없도록 내 다리를 붙잡았다. 한참을 쿰쿰한 오래된 책 냄새에 파뭍혀 책을 읽었다. 해가 지고 서점을 나서는 내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있다. 밤은 깊어 골목은 어두웠지만 책과 함께 걸으니 그곳 또한 분위기 있는 산책로 같았다.

나는 <이미령의 명작산책>을 펼치며 낯선 서점에 들어섰고 책을 읽으며 깊은 밤의 골목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책 속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을 진짜 서점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고 또 그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소소하게 책을 읽고 쓰고 있지만 <이미령의 명작산책>과 같은 책을 읽으면 내가 쓴 리뷰들은 여전히 책의 겉만 핥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 찾아 읽는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바라보는 관점과 풀어내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책으로 읽히므로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쓴 글을 읽는 게 즐겁다.

특히 <이미령의 명작산책>처럼 알지 못했던 숨은 진주 같은 책들을 만나게 되는 책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불교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팔만대장경'을 우리글로 옮기는 일을 해왔다는 저자의 글은 마치 연꽃처럼 은은한 향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화려하지 않아서 자극적인 책 소개와 강렬한 추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천천히 읽고 느리게 생각한다. 한 편의 책을 읽은 후, 차분하게 써 내려간 그녀는 글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어우러진 한 권의 책을 펼친다.



<이미령의 명작산책>은 오래전 칼럼을 통해 소개한 책들은 엮은 책이다. 처음의 감동이 가장 진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칼럼의 내용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그녀의 말처럼 책 속에서 소개하는 한 권, 한 권의 책에는 소중히 여기며 읽고 쓴 흔적들이 가득하다.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에서 매일 책 한 권씩을 소개한다는 저자의 방송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미령의 명작산책>을 읽고 있으니 왠지 차분하고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책은 5가지의 주제로 나눠 총 48권의 책을 소개한다. '찬란하게 서글픈 인생', '청춘을 지나오며', '생명의 숨소리를 듣다', '오만한 세상에 훅을 날리며', '뭉클하게 마침표를' 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주제에 따라 저자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는 각 장의 제목과 완벽히 부합하는 것도 있고, 왜 이 책을 여기에 넣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책도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읽게 되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어느 부분에서 저자는 그런 감동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듯,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을 때면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독서를 하고 있다.


48권의 책 중 읽어본 책보다 알지만 아직 읽지 못했거나 <이미령의 명작산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책이 더 많았다. 소개하는 책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다음 기차를 타면 되지, 뭐"라는 문장이 인상적인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와 필립 베송의 '포기의 순간'은 깊은 사색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우리는 얼마나 제 의지대로 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봤으면, 저렇게 살아봤으면 하며 생각만 하다가 끝내 실행하지 못하고 그냥 '남들 살듯이 그렇게 사는 게 진리'라고 자위하며 삶을 마감하겠지요, 간혹 현실을 박차고 나가 인생을 개척하는 엄청난 의지를 지닌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꿈만 꾸다 맙니다.

인상적인 몇 권의 책을 비롯해 <이미령의 명작산책>을 읽은 후에 꼭 읽어봐야겠다고 적어둔 책은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과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이다. 도쿄타워를 소개하는 글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철없이 인생을 시작해서 버둥거리며 삶의 고비를 넘어온 부모의 삶은 늘 미완성입니다. 부모의 삶이란 어쩌면 자식이 장성해서 출세하는 것으로 완성되기보다는 자식 앞에서 회한의 눈을 감고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아닐까. 또 '부모의 임종'을 겪은 사람만이 '자식'으로 완성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물을 때마다 난 항상 사색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던, 내 생각을 쓰던 즉흥적으로 툭 내뱉는 글이 아닌 생각하고 음미하며 사색이 담겨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글을 쓰고 싶지만 여전히 나의 글은 단순하고 가벼우며 일회용이다. <이미령의 명작산책>을 읽으며 더욱 그렇게 느꼈다. <이미령의 명작산책>을 읽으며 꼭 읽어봐야 할 책을 알게 되어 좋았지만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책을 읽고 써야 할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뜻깊은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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