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리뉴얼판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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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이 책 있는데 새로 또 사고 싶네.
이런 책을 읽으면서도 스티븐 킹의 속사포같은 직설화법에 빨려들어간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인격체다. 이 책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실제로 그의 글이 유혹적이기 때문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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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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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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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VS 옴진리교 - 일본 현대사의 전환점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네티즌 나인 지음 / 박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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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vs 옴진리교 

일본 현대사의 전환점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이 책이 읽혀야 하는 이유는 기괴한 종교단체의 무차별살인테러에 대한 잔인함 때문이 아니다. 

서문에도 씌여있지만, 


“사건의 피해자와 희생자의 유족은 

그저 피해를 입은 것에 불과한 수동적인 위치의 사람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게 하고 

피해를 배상받을 권리가 있는 채권자이기도 하다는 주장”


이게 가장 큰 핵심이다. 


이 책은 세월호를 위해 씌여진 책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사후처리를 이십년이건, 삼십년이건, 백년이건 할지를 위한 다짐의 책이다. 

3년이 지났으니 이젠 잊어라…같은 무식한 소리는 하지 맙시다. 이제. 

늘 성금모으기를 하면 화가 났다. 왜 선의로 해결하려 하는가? 왜 내가 피해자를 도와야 하는가?

돈을 쳐가져간 새끼는 따로 있는데. 

실수령자, 실소유자, 세월호 사건으로 득을 가지게 되는 쪽에서 모든 피해를 구제하라. 

“돈- 보상금- 자식장사” 이런 말로 피해자들의 정당한 채권의 권리를  무력화하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들이 생계수단 잃고 길거리에 앉아 텐트치고 농성하고 매일 울면서 불쌍한 척해서 세금으로 보상금 받아쳐먹는다고 하는 일부 몰상식한 발언으로 2차가해하는 일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돈을 줘야하는 가해자 측의 프레임짜기일 수도 있다. 사악한 놈들이 돈 안주려고 무슨 짓을 못하리. 그러지 않고 일반사람들이 자식팔아 장사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잠재적살인자나 마찬가지인 듯. 지들이나 자식 죽여서 보상받으라지. 


세기의 사건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민사형사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일 듯. 

사기꾼도 제발 2년만 빵살고 나오지 말고, 돈 버는 족족 은행에 압류해서 피해자들한테 돌려줬음 좋겠다. 

2년 살고 0에서 다시 시작이 아니라 영원히 30년동안 0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사기를 안치지. 

이런 새끼들은 분명 현금뽑아서 어디 땅에 묻어놨을거다. 

사기당한 피해자들은 평생을 모은 돈일텐데. 개새끼들. 


1995년 지하철에 사린가스로 살인테러를 저질렀던 종교단체 옴진리교는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금은 테러라는 것,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민간인이 학살되는 것이 그닥 충격도 아니다. 

물론 충격이지만 말하자면 세기의 충격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는 9.11테러 이전이었기도 했고, 

일본사회는 최선진국에 보안, 안전 문제로 구멍이 날만한 수준의 국가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행정상으로는 13명이 사망하고, 65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하지만 살인행위가 있었던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1988,89년에 실수로 신자가 죽고, 이듬해 신자 살인이 행해진다. 그 이후로도 자신들의 종교의 입지를 약화시키거나 공격하면 살인의 대상이 되었다.  옴진리교에 가족과 재산을 뺏긴 가족들의 피해를 돕던 변호사 일가족이 살해당하기도 한다. 이후에도 계속 이런 살인행위는 간헐적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옴진리교의 범죄사실은 1995년 지하철 테러사건이 있은 후에나 밝혀졌고, 일본사회와 경찰, 공무원, 언론들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주의깊게 연결시키지 못했다. 결국 수많은 부상자와 사망자를 낸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이후에 일본사회는 정신을 차리게 된다. 


하여, 이 책의 핵심은 사후처리를 일본이 얼마나 끈질기고 전략적으로 해나가냐는 스토리가 파트2이다. 

개인적으로는 옴진리교의 마지막 수배자들이 잡히는 이야기부터해서 이들의 역사를 차근차근 해설해 주는 글도 무척 좋았다. 행위와 사건이 있었다면 그곳에 담긴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뒤로 갈수록 비문이 많아지는 느낌도 살짝 들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문단 하나하나에 긴박함도 있고, 맥락이 잘 설명되어 있어 자세한 내막에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 

대망의 파트2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핵심의 핵심이며 마음에 새겨야 할 정도이다. 

이 글을 국회의원이나 변호사들, 공무원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같은 민간인도 읽으면 좋겠지만- 


파트2를 정리좀 해봐야겠다. 


일본사회가 충격을 먹고 반성과 후회를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의료지원부터 해야했고, 온갖 학회들이 이 사건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회학, 심리학, 종교학 등. 

그리고 수사기관과 일본정부는 옴진리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옴진리교라는 집단에 타격을 입히고,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했는데. 

후자는 형사재판을 통해 개개인의 범행을 재단할 수 있었지만, 교단 자체를 붕괴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소수만 처벌을 받고 다시금 이 단체가 결집해 유사행동을 한다면…이 사건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은 것이 못되었다. 

해서, 3가지 방법을 쓰기로 한다. 

종교법인법에 따른 해산명령, 옴진리교 파산 절차 돌입, 파괴활동방지법 적용이었다. 


법인 문제. 법인이 아니라고 해서 종교활동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인이 아니라면 세제상의 우대가 없다. 그러면 세금을 더 많이 징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징세대상이 되면 경제활동을 공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된다. 또 종교법인이 아니라면 교단 이름으로 부동산 소유를 할 수 없고, 간부체포를 통해 인적자원을 뺏고 자금원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산이 날아간다. 대개는 이럴 경우 재판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본사회는 이를 극적으로 빨리 해결해버린다. 


또 하나는 파산문제. 

당시 피해대책변호단은 옴진리교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배상을 위한 것이기도 했고, 옴진리교의 파산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대략 50억엔 정도를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계획에, 그들의 보유재산은 10억엔 전후로 추산되었다. 그러니 채권이 자산보다 많으니 파산을 신청할 조건은 갖춰진 셈. 재판소가 파산결정을 내리면 파산관재인을 선정하게 되고, 이 파산관재인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때 파산관재인으로 일본의 무척 유능하고 나이 많으신 변호사 아베 사부로가 맡게 된다. 

어쨌든 그리하여 각종 사건의 유가족, 피해자 및 온갖 채권자등 2191명이 옴진리교를 상대로 대략 92억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하고, 그 가운데 대략 51억엔이 채권자의 채권액으로 확정된다. 일본정부 역시 법무대신을 대표자로 삼아 2억5천 엔 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옴진리교의 파산을 신청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일본정부의 특별배려이다. - 파산제도는 공적절차를 이용해 개인의 채권을 보상받는 거라 파산관재인이나 상치대리인 등의 업무에 따른 비용을 채권자가 지불하는 게 원칙이다. 그렇게 이들의 활동을 위한 자금을 확보후 파산절차가 진행되는거라 예납금을 내야하는데, 유가족들한테 보상받고 싶음 예납금 내세요 하는게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어- 심지어 국가도 옴진리교 상대로 파산신청을 했고- 예납금 대부분을 국가가 지불했다. 

당시 옴진리교사건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거라고. 그렇지만 파산관재사무실 찾는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옴진리교에 대한 공포가 컸고, 당시 이 사무실 주변 경호 역시 3년간 24시간 대비했다고 한다. 그만큼 파산절차 진행에 만전을 기했다고. 

결과적으로 옴진리교는 채권자 중 피해자 및 유가족 1201명에게 38억엔을 신속히 변제하라는 청구서를 받게 되었다. 

한편 파산관재인은 정식파산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도쿄도로부터 세금을 납부하라는 통지를 받는다. 일괄 세금업무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통지가 온 것인데, 파산관재인 입장에선 인정할 수 없는 것. 세금을 내면 피해자에게 돌아갈 돈이 적어진다. 해서 아베는 도쿄 도지사에게 편지를 쓴다. 지하철 사린 사건으로 많은 도쿄도민이 피해를 입었는데 도쿄도가 꼭 이 세금을 받아야만 하겠냐고 묻자, 세금을 청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옴진리교 뿌리뽑기중 3번째는 파괴활동방지법이다. 

테러방지법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는 기각된다. 사안이 워낙 까다로운 것이다. 함부로 이 법을 적용하면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라는 오명을 쓸 만큼 무자비한 개인사찰이 있을 수 있기에 위험했다. 후에 특별법이 생겼다고 한다. ‘무차별대량살인행위를 행한 단체의 규제에 관한 법률’ 이라고. 


파산관재인의 큰 관심사는 어쨌든 1엔이라도 더 확보하는 것이었고, 

옴진리교 물품들은 처리방도가 없었다. 옴진리교에 대한 비난과 공포감이 있는 상황에서 말없이 중고나라에 팔 수도 없고 해서 일단 비품 매각 바자회를 열어 이 돈이 피해자에게 갈 것이라고 했더니 대성공이었다고. 

또 건물해체비용. 옴진리교 애들이 쓰던 건물이 안팔리니 해체하고 땅만 팔아야할 판인데 이러다간 건물해체비용때문에 적자가 날판이거다. 이 또한 아베가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로 마음 먹고, 해체와 쓰레기비용을 정부가 해결하지 않으면 옴진리교의 일부부동산에 대한 처분권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그렇다면 일본정부는 경제가치 없는 건물과 토지가 국고에 귀속되는 부담과 피해자 권리 회복에 힘쓰지 않았다는오명을 쓰게 됨.  결국 국회 및 절차 거쳐 국가부담으로 해결. 

일본 파산제도는 파산절차가 진행돼 채권자가 배당받을 때 국가채권이 우선이라고 규정되어있지만, 이번에는 그것도 피해자 우선으로 함. 특별법이 만들어짐. “옴진리교에 관한 파산 절차상의 국가의 채권에 대한 특례에 관한 법률” 그리하여 채권자 2191명에게 약 9억 6천만엔이 배당된다. 총 채권의 22.59%를 이 때 회수한 것이다. (일본사회에서는 일반적인 파산절차의 경우 채권의 20%가량 받으면 성공으로 친다. 20%이상을 갚을 자산이 있다면 애당초 파산하지도 않으니 이정도가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함,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지 않았다면 16.2%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이 외에도 기금, 모금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구분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무작정 성금이랍시고 돈을 모아대는 것과는 달랐다. 물론 저자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의 기금모으기에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목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그에 따른 모금을 하는 것이 적절한 듯 싶다. 선의를 남발하는 것이 그닥 좋은 일 같지가 않다. 막대한 규모의 성금은 책임소재규명에 대한 날카로운 추궁이 무뎌지는 부작용이 있고, (맞는 말인 듯) 엄격하고 분명한 책임 추궁을 통해 정작  책임져야 할 집단과 개인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사회적인 동력이 약해진다는 이야기. 그 이후에야 사회구성원들의 선의와 협력을 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라는. 

이그리고 언론의 문제. 어젠다세팅. 일본 언론은 옴진리교 잔존세력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회사들이 합법적으로 서류상으로는 활발히 기업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단순히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정의로운 일인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이런 추상적인 질문이 결국 법의 실행을 넘어서 민주주의 국민이 법을 고쳐서라도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언론이 실로 국민과 국회, 그리고 사회를 향애 그들이 해야할일을 알리고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20% 가 넘는 채권을 배당받았지만, 후에 기금이나 일반채권자가 실피해자에게 채권을 양보하는 등 해서 40%가량 보상을 받았지만, 이 때도 정부가 아직 60%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얘기 함. 


후계단체의 뿌리뽑기와 감찰도 계속되었다. 감찰은 지금도 계속 갱신되고 있다고 한다. 신기한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란 이토록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해도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고. 


아베 사부로 변호사는 이 외에도 일본 사회에 남긴 상처로 아동문제에도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아이들의 교육수준도 떨어졌고, 학교에선 입학시켜주지도 않는 곳도 있었는데 법적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애쓰고 보호했다. 그런 아이들이 무려 100여명이 넘었다. 아베 사부로가 처음에 이 일을 마무리하는데 3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12년이 걸렸고, 아직도 완전히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분의 피해구제는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일본정부는 스스로가 옴진리교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데 최선을 다했다. 물론 국가가 종교단체의 이상징후를 눈치채지못하고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1차적인 문제도 있을테지만, 어쩌면 폭력과 자만심으로 일본전복을 꾀했던 옴진리교의 농단을 참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의 자존심 문제 아니었을까…싶기도 하다. 고작 이딴 종교단체에게서 공포를 느껴야 하는 현대국가로서의 위상이 이정도였을까 하는… 국민들이 정부에게 신뢰를 다시 갖게 하려면 그렇게 했어야 마땅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세월호 사건의 사후를 이야기하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든다. 

이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고, 이 사건은 보기 좋은 예시라는 생각이 든다. 

유가족과 피해자가 많은 돈을 받아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돈보다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는 말에 100프로 이상 공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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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drug 2018-05-1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글 쓰는 거 어렵네. ㅋㅋ
 
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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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책을 품은지 2주가 넘었지만, 왜 내가 감동적으로 느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기술하기가 힘들었다. 나중에는 이  모호한 감동이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소위 ‘먹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호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 글의 목적이나 스타일이 다소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목적없이 씌여진 것처럼 흩어져 있는데 자세히 관찰하면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온 식물들처럼 그렇게 느껴졌다. 자서전도 소설도 과학책도 아닌 이 글이 뭐길래 나의 신경을 자극해 콧끝을 시리도록 만들었나. 언니는 내게 처음에 과학 실험 파트가 지루할 수도 있을거라고 내게 경고했는데, 지루하긴 커녕 이 파트가 더 흥미로웠다. 그것이 단순히 나무의 일생과 역사를 설명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 이유랄 게 결국 예상가능하게도 생존과 번식이지만 기특하게 멸종하지 않고 건재해 준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생명체들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다. 새삼. 게다가 호프 자런의 여성으로서의 캐리어, 독보적인 호기심과 상상력이 그녀를 훌륭한 과학자로 만들어주기까지의 아드레날린 넘치는 과정들이 감격적이었다랄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휘리릭 앞을 지나쳐보다가 맨 앞장은 자신의 글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했고, 그 뒷장은 헬렌 켈러의 말이 적혀 있다. “더 많은 것을 만져보고 배우고, 그들의 이름과 용도를 알아갈수록 나는 더 기쁨에 넘쳤다. 그렇게 얻은 자신감은 내가 세상과 밀접히 관계 맺은 존재라는 느낌을 강하게 만들어갔다.” 


이런거였구나…


언젠가 정재승 과학자를 보고서 깨달은 것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과학이야말로 망상에서 시작되어 차츰 더 현실적인 차원으로 실현하게끔 만드는 거대한 기획같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오듯이 사막에 떨어진 씨앗 하나가 이파리를 만들었다가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으니 가시로 전환하고, 그렇게 뾰족하게 그곳에서 수분을 덜 뺏기며 거친 환경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은 돌연변이같은 존재들. 감성 없이는 과학은 존재할 수도 없다고. 


내가 과학을 하지 않은 이유는 좌뇌 우뇌의 발달이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나는 이과를 갔고, 이유는 문과의 지지부진한 애들과 선생님들이 싫어서였고, 쿨해보이고 싶었고, 의대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생물이나 화학을 흥미로워했으나  젬병이었따. 겨우 친구를 붙잡고 물어물어 이해를 하더라도 머리만 돌리면 새하얗게 기억이 나지 않아 두려움이 있었다. 공부 잘하는 이과의 여학생들은 내게 차마 설명을 못해줘도 이미 감각적으로 ‘과학’이 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것을 설명하지도 못하면서도 이해한다는 사실에 더 감탄을 하던 시절이었다. 수학에도 흥미를 보였고, 심지어는 잘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대학 가서까지 수학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게 느껴졌고 그렇게 예체능이라는 제 3안으로 도피하고 말았다. 
과학은 확신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답이 있는 곳이고, 정확한 구상이 가능한 곳이지만 나는 느슨한 성격이지만 의외로 결벽증이 있어서 내가 확실하지 않은 것에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자꾸만 나의 뇌를 믿으려 하지 않고, 다른 이의 뇌를 믿고 싶어지는 불확신의 상태가 계속 될 것 같았다. 어떤 과학영화나 의학드라마에서도 “이게 확실해??” 하면, 대개 똑똑한 의사들이나 과학자들은 “내 말이 맞다니까! 날 믿어요!” 라고 할테지만 나라면 “제가 실험을 100번 했는데,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오차가 있을수도 있겠죠…중간에 실수를 했을지도… ” 라며 끝을 흐릴 것이다. 이건 결벽증일 수도 있고, 책임 회피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일까. 
하지만 예체능이라는 곳은 본디 내추럴본 ‘자기확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내가 망하고 만 것이다. 
길을 잘못 든 것이지. 내가 과학으로 갔다면 크게 위험을 조장할만큼 좋은 직업을 어차피 가지지 못했을테니 자잘하고 소소한 무엇인가를 하고 살았을수 있겠지만, 제3세계인 예체능으로 오면서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뿌리를 잘 못내렸다. 하지만 나는 식물이 아니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 모를 일이다. 


소소하게 집에서 식물을 기르는 것 중의 하나가 선인장이다. 점점 길어지고 위로 자라서 화분이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부러졌다. 그 애를 잘라서 다시 작은 화분에 소분했다. 그렇게 해도 또 다시 잘 자란다. 처음에는 좀 징그럽게 느껴졌다. 물론 팔을 잘라서 처음에는 썩지 않도록 살짝 말려준 후에 다시 심으라고 하더라. 그렇게 했다. 그러자 어느 날부터 옆에 점이 하나 생기고 그 위로 또 다른 팔이 하나 튀어나왔다. 그런식으로 만세형의 선인장이 되었다. 그런데 한동안 까먹고 물을 주지 않자, 한 애는 팔 하나를 떨어트렸다. 물을 주면 줄기가 탱탱해지고, 물을 주지 않으면 쭈글쭈글해졌다. 
또 하나는 미나리. 어릴 적에 미나리를 엄마가 집에서 가위로 숭겅 잘라 된장국에 넣었던 걸 기억하고 나도 미나리를 사서 먹고 남은 몇개를 물에 담궈봤다. 그랬더니 점점 뿌리가 생기고, 새순이 돋아나고, 또 자라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양파도 당근도 고구마도 싹이 나고 조금씩 자란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안의 곰팡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난 증상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면 저자가 쓴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이파리에 대해서 질문을 하라고. 그러면 이제 과학자가 된 것이라고. 

*******************************


<랩 걸> 과 내가 좋아해 마지 않는 영화 <어댑테이션>이 갑자기 오버랩이 되었다. 
<어댑테이션>은 찰리 카우프만 작으로, 스파이크 존즈가 감독을 맡은 2004년의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인 찰리 카우프만이고, 새로운 기획으로 꽃에 대한(다시 찾아보니 난초도둑) 영화시나리오를 각색중이다. 찰리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꽃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매번 확신이 없어 관련자들을 회피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저자의 심리상태를 살펴보게 되는데, 그가 피하려고 했던 비현실적이고 전형적인 시나리오 전개인 총과 마약, 섹스 그리고 액션이 난무하는 스토리가 실제로 그의 눈 앞에 벌어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장면이 저자인 수잔이 친구들과 저녁식사 중에 라로쉬(난초수집가)의 외모를 비웃으며 기인이라고 놀려대는데 혼자 화장실에 들어와 그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의 난초를 향한 열정에 뜨겁게 홀로 감동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왜 이 장면이 그토록 강하게 마음에 와서 들러붙었을까. 호프 자런과 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로에게 반할 때 서로의 열정에 반하게 되는 거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사실 드물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일상을 버리고 싶은 사람은 실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게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강력히 들만큼 해야만 할 일이 있다면, 그런 명분과 당위가 있다면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공감할 친구가 있다면 그걸로 된거 아닐까. 

   

****************

결국 다시 영화를 보았다. <어댑테이션> 
그러자 수잔 올린의 <난초도둑>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글을 읽으면 보다 정수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찾아보다 절판이 되었길래 중고책을 알아보던 도중,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난초도둑’에 쓰인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은 난초를 좋아하지 않고, 유령난초가 궁금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이길래 누군가를 이렇게 매료시킬 수 있는 것인지 그 대상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하지만 막상 그 실체를 보고 나면 거대한 ‘실망감’이 찾아오고 그로 인한 허탈함과 미묘한 상실감과 심지어는 배신감 등이 조금씩 뒤섞여 나온다. 
영화에서 쌍둥이 형제는 두 연인이 총을 겨누는 와중에 늪지에 숨어 죽기 전에 나눌법한 대화들같지 않은 첫사랑에 대한 농담을 나눈다. 그 안에서 일말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한다는 그 마음 자체가 내것이므로, 그건 심지어 대상이 날 어찌할 수 없다. 내 감정이고 내것이다. 난 그렇게 살기로 오래전에 결심했다라는 동생의 말에 감화되는 형. 이것은 열정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가진 열정의 감정이 내것이지, 그 대상은 그저 거기에 있는 것일 뿐.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는 대단한 것 같다. 흔히 캐릭터들의 입체감과 밀도얘기를 하며 칭찬할 때마다 속으로 나는 코웃음을 쳤다. 반전있으면 입체감 있나? 끝에 가서 캐릭터가 변화하면 입체감 있다고? 의외성이 조금만 보이면 입체감 운운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안하지만 진짜 입체감 있다. (이래서 입체감 있단 말 하기 싫은데, 칭찬의 표현 자체가 너무 전형적이다… 크, 나의 한계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도 미국 지식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늘 그 안에서 현실감각으로 와닿는 충돌을 준다. 과연 이 사람이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일까? 조금씩의 반전과 반전. 영화를 다시 보니 한 장면 한장면에 감정 하나씩을 얹고 쌓아가는 디테일에 소름이 끼쳤다. 2003년에 비디오 대여해서 볼 때만 해도 낄낄거리면서 니콜라스 케이지 분장과 멘트에 빵 터졌는데. 그땐 보는 수준이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속에 오래 남아 늘 좋은 영화로 기억되었던 영화였다. 당시만 해도 수잔 역의 메릴 스트립의 매혹당한 나레이션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소심해서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주인공의 일상을 그리고, 내면을 그리면서도 이렇게 다이나믹하고 코믹하게 그려내기는 쉽지 않다. 본인도 실은 이 시나리오를 쓸 때 아무도 승인해줄 것 같지 않고, 커리어가 끝장 날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썼다고 한다. 헐리우드나 한국이나 전형적인 스크립트를 벗어나 글을 쓴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파트너 스파이크 존즈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쉽지가 않다.  However, 팩폭 in fact, 잘난 놈들은 끼리끼리 모이기 마련이고, 잘될 놈은 잘 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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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drug 2018-05-1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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