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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 - 사도신경에 담긴 기독교 진리
칼 바르트 지음, 신준호 옮김 / 복있는사람 / 2015년 3월
평점 :
잘 아는 것처럼 바르트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교회를 지켜냈다. 하지만 정작 보수신학은 그를 자유주의 신학자라며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보수신학은 바르트를 읽지 않는다. 읽더라도 배우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기 위해 읽는다. 당연히 바르트의 신학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가 지적했듯이 ‘교의학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사고와 연구와 서술에 그칠’(13)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피조물 곧 불충분한 자의 공간 안에서 그분 자신을 계시하는 일을 기뻐하셨다(35)’ 그렇다면 바르트 신학의 비판적 수용은 합당하다.
그렇다면 그를 읽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그의 대표작인 <교회교의학>은 무려 13권이나 된다. 한국말로 모두 번역된 것도 아니다. 번역된 한국말로 읽기에도 숨이 찰 지경이다. 한자 한자 꼭 씹어 읽어야 그의 논리를 따라갈 수 있다. 물론 시간을 들여 <교회 교의학>에 도전해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이 힘에 부친다면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판된 <교의학개요>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도입명제만 준비하고 강의록 없이 강의한 것으로 유명한 이 책은 바르트의 신학의 면모를 살피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우선 주목하는 것은 <교의학개요>의 줄기가 칼뱅의 <기독교 강요>와 마찬가지로 사도신경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의 <교회 교의학>도 이 구조를 견지한다. 이것은 그가 교의학을 더 나아가 신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도신경을 교의학의 기본으로 삼은 것은 교의학이 사변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고 교의학이 교회를 위해 더 나아가 예배를 위해 섬길 수 있게 한다. 이처럼 그는 교회를 위한 신학을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공공성을 향하지 않는 어떤 믿음, 그러한 어려움을 회피하는 어떤 믿음은 그 자체가 이미 불신앙, 잘못된 믿음, 미신이다(42)’고 하면서 교회가 울타리를 깨고 밖으로 나오기를 촉구한다. 또한 ‘(교회의 신앙)고백은 일반인의 언어 곧 남자와 여자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47)’며 교회가 세상을 더 적극적으로 섬길 것을 요구한다. 교회 안에 갇혀 있으면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오늘 한국의 교회가 바르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신학적 사유의 근력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목회현장은 아무래도 이런 근력을 키우는데 적합하지 않다. 손에 쉽게 잡히는 목회방법론을 쫒아가다 보면 이내 신학적 사유의 근력이 시들해버린다. 이는 신학의 빈곤으로 이어지는데 그 불이익은 고스란이 교회와 성도의 몫이다. 바르트는 사도신경의 모든 단어와 문장에 집중한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깊은 의미를 우리들에게 전달한다. 그를 따라 한 문장 한 단어를 꼭 씹어 읽다보면 그의 생각에 공감하며 무릎을 치기도 한다. 이것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만 읽을 것이 아니라 늘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그렇게 읽는다면 바르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어쩌면 이 책으로 충분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