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신경 -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
스캇 맥나이트 지음, 김창동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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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약간 어색했다. ‘예수신경이라. ‘신경하면 사도신경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사도신경은 공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아주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신경은 왠지 사도신경에 딴지를 거는 것 같았고 그만큼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신경은 우리가 받아드려야 할 무엇으로 알고 있다. 사도신경을 보라. 거기에는 우리가 지적으로 동의하고 받아드려야 할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예수신경이라 했을 때 사도신경처럼 예수님이 동의하고 받아드렸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신경은 실제 사도신경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신경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신경은 우리가 지적으로 동의하고 받아드려야 할 무엇이 아니란 행하고 따라야 할 무엇이다. 얼마 전 작고하신 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기도교의 심장>(한국기독교연구소, 2014)에서 믿음의 잘못된 정의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어떤 주장을 참된 것으로 믿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킬 힘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것을 믿으면서도 노예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크리드(creed) 혹은 크레도(credo)라고 불리는 신경의 원래의 의미는 나의 심장을 바칩니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믿는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맥나이트 역시 이런 관점에서 믿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예수신경은 예수님이 지적으로 동의하고 받아드린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이다. 결국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신경믿음사랑이라는 말이다. 엠마우스 운동을 펼친 피에르 신부가 <단순한 기쁨>(마음산책, 2001)에서 믿음은 사랑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예수님에게 믿음은 곧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하나님 사랑을 넘어선 이웃을 향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의외였다. 예수신경이 무엇인지 잔뜩 기대하고 책을 읽어 나갔는데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을 들려준 것이다. 이런 맥빠짐은 내가 믿음과 사랑을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성도의 우선적인 사명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랑이 없어도 우리가 동의하고 받아드리는 그 무엇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믿음과 사랑을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훨씬 더 쉬운 믿음의 영역에 서 있으면서 사랑이 없어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맥나이트는 이런 나의 생각을 무너뜨렸다.

 

사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예수님이 믿고 따랐던 신경이었다는 것을 밝힌 것은 놀라운 통찰이다. 이것은 그가 역사적 예수 연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하나님 사랑이 당시 유대교의 신경이었었고 이웃 사랑은 이런 신경의 중심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포함해서 맥나이트는 예수님이 사셨던 1세기 유대인의 입장에서 복음서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그러나 쉽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제대로 배우는 기쁨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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