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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신학 입문
칼 바르트 지음, 신준호 옮김 / 복있는사람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할아버지들은 손주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물론이고 그들이 자라 학교에서 시험을 치고 연애를 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할아버지는 자신의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을 준비해 놓고 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어렵게 들릴 때도 있다. 어떻게 손주가 할아버지의 말을 다 알아듣겠는가! 이럴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 복을 걷어 차버리는 격이다. 잘 몰라도 인내하며 듣다보면 할아버지의 엄청난 지혜를 전달받을 수 있다.
이 책의 느낌이 그러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평생 신학의 길을 걸어온 노 신학자가 후배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는 이미 어디가 위험한 지점인지 무엇이 패착인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 씹어야 한다. 막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내하며 계속 읽어 나갈 때 손주를 위하는 할아버지와 같은 바르트의 숨결을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신기하게도 손주의 문제가 무엇인지 꼭 집어내는 능력이 있다. 바르트는 교회의 위기가 신학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신학을 소수의 전유물로 삼는 것을 경계하면서 신학이 모든 성도들과 교회의 사명임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을 보며 알 수 있다. 그의 지적은 백번 옳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 역시 신학의 부재가 그 원인이다. 교회와 목회에 신학의 자리가 없다. 신학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도 싫어하는 분위기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의 바람처럼 교회와 성도들이 신학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하며 바른 신학을 통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음미하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면 바르트 할아버지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니 바르트는 그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 사람이었다. 기도가 신학하는 최우선의 자세임을, 신학의 자리가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을 보라! 그가 당시 기적을 성경에서 밀어내고 있었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힘겹게 싸웠던 사실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르트의 유산을 어느 정도 이어받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섣부른 선입견 때문에 아직 바르트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이 책을 펼치기를 바란다. 할아버지가 되어 들려준 그의 신학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