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32

 

내 이름?

에드워드 컬렌

나이?

108

벨라?

나의 사랑 벨라

 

 

하루하루 지날수록,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바짝바짝 마르는 듯한

그 느낌은 매우 나빴다. 난 침대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봤고, 간간히 느껴지는 인간의 피

냄새가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그것’을 자극했다. 난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내 손가락을

세 번째 부러트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칼라일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내 부러진 약지손가락에 붕대를 감아 줬다.

 

“에드워드.. 아무리 금방 아문다지만 그만 했으면 좋겠구나.”

“죄송해요 칼라일”

 

난 그렇게 대답을 하고 눈을 감았다.

 

‘큭큭 에드워드 소용없어’

 

닥쳐..

 

‘벨라가 보고 싶지?’

 

....

 

‘나도 벨라가 보고 싶은 걸?’

 

닥쳐.. 너 따위가.. 감히..

 

‘큭큭.. 네가 강해졌으면 좋겠어. 에드워드’

 

...

 

‘그래야 내가 즐겁지..큭큭’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고, 손톱 안으로

내 차가운 피가 스며들었다. 그와 함께 역한 냄새가 내 후각을 마비 시켰다. 난 배란다

문을 열고 바람을 느껴봤다. 비가 오고 있어 바람은 무거웠지만, 내 머리를 조금이나마

맑게 해주기엔 충분히 상쾌했다. 벨라를 못 본지 어느 덧 일주일째다. 벨라에게 전화가

오지만 난 받지 않았다. 벨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것’이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웠다.

 

“벨라..”

 

내가 낮게 중얼 거렸다. 칼라일은 내가 각성한다 했다. 완전체가 아닌 나는 각성을 하게

되면 우리 가족 아니, 어쩌면 현존하는 뱀파이어 중 가장 강하고 가장 욕구에 약한

뱀파이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했다. 강해지는 건 좋은 일이다. 나도 원하는 일이다. 그만큼

강해지면 벨라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만큼 욕구에 약하다는 건, 벨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벨라를 지킬 수 없다. 내가 벨라를 죽일 수 있다. 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대고 욕지거리를 하고 싶었지만 이번은 하늘이 문제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였다.

 

“칼라일.. 제가 이성을 잃으면 절 죽여주세요.”

“에드워드!”

 

난 창문을 닫고 칼라일에게 몸을 돌렸다. 칼라일의 얼굴은 두려움과, 혼란, 망설임, 같은

것들이 뒤엉켜 있었다. 난 칼라일을 향해 웃어 보였다.

 

‘에드워드.. 쓸 때 없는 생각은 하지 마’

 

‘그것’이 낮게 경고했다. 난 피식 웃었다. 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넌 날 떠날 수 없지?

넌 나라고 했지? 그럼 널 없앨 수 있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지?

 

‘맞아 에드워드.. 하지만 넌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해’

 

후..과연 그럴까? 난 어느새 ‘그것’과 이야기를 했다.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진 느낌이었다. 예전엔 ‘죽음’이란 것에 매우 불안감을 느꼈다. ‘불멸’한

뱀파이어가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아이러니한 이야기였지만, 난 ‘죽음’을 매우 두려워했고

또한 매우 원한 것 중에 하나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는 이유 따위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항상 지루했고, 항상 의미 없었다. 하지만 벨라를 만난 1년도 안된

이 시간이 나를 바꿔놓는 커다란 무엇이 되었다. 벨라라는 사는 이유가 생겼고, 재미도

생겼다 ‘벨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 기나긴 밤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다음 날 뜨는 해가

반갑기까지 했다. 세상에 날 내놓는 것이 당당했고 자랑스러웠다. 벨라는 나에게 사랑하는

‘여인’ 이라는 말로 부족했다. 벨라는 나의 공기이며 태양이며, 나의 모든 것 이었다.

그 모든 걸 내 손으로 깨버릴 위기에 처했다. 빌어먹을 ‘운명’ 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벨라만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거면 충분했다.

 

“부탁...할게요 칼라일..”

 

난 다시 한 번 칼라일에게 강조했다. 아마 칼라일은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더 벨라를 사랑 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였다. ‘난 오래 살 생각이 없다’ 그것이 내가 정한 답이었다. 웃음이 세어 나왔다.

마음이 아파왔다. 난 가슴을 양팔로 감싸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그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난 벨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칼라일.. 사냥을 가야겠어요.. 아주 많이 사냥을 해야겠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라일은 방을 나갔고, 이내 사냥을 가기위해 1층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 혼자 가는 건 불안전했다. 언제 이성이 끊기고,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내가 혼자 있을 때, 각성하는 날이면 그 주변의 인간들은 모두 죽고 말 것이다.

그래도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땐 내 '가족'이 함께 할 것이다.

난 외롭지 않을 것이다. 두렵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벨라가 걱정될 뿐이다. 칼라일이

1층에서 나를 불렀다. 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에드워드..네 뜻대로 될 수 없어’

 

난 ‘그것’의 말을 무시했다. 나는 곧 에밋의 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지금은 위험했다. 조심해야 했다. 나에게 자극적인 건 뭐든 할 수 없었다.

운전을 하는 일도, 스피드를 즐기는 것도, 벨라를 만나는 것도 모두 나에겐 위험했다.

어서 이 위험한 일을 끝내야 했다. 난 차의 가죽 시트에 몸을 깊숙이 넣었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차에 타고 있는 에밋과 로잘리 그리고 칼라일의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불안한 그들의 마음과, 안쓰러워하는 그들의 마음, 난 고개를 흔들었다.

 

 

-

 

 

우린 어느새 ‘몬타나’에 도착했다. 역시나 차를 숨겨두고 숲을 향해 뛰었다. 난 마음 것

바람을 느끼고, 사람의 피 냄새가 섞이지 않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였다. 우린 곧 눈에 익숙한 들판에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난 에밋과 재스퍼와 함께

내기를 했다. 내기의 상품은 ‘소원’이었다. 지는 자가 이기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아주

쉽지만 어려운 상품이었다. 난 이 내기에서 꼭 이길 생각이다. 그 ‘소원’이란 상품이 내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준비~ 시작!!”

 

로잘리의 시작 소리와 함께 우리 셋은 동시에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출발은 비슷

했지만, 점점 속도는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난 전보다 더 가볍고 빨리진 몸에 피식 웃음이

났다. 점점 강해지고 있는 내가 낯설었다. 곧 눈앞에 범이 나타났다. 난 망설임 없이 단번에

범의 목을 낚아챘고, 그대로 피를 마셨다. 범은 도망도 가지 못하고 비명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끊어 졌다. 난 범의 마지막으로 뛰는 심장을 느끼고 다음 사냥감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저 멀리서 에밋의 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

 

그리고 내 눈앞에 또 다른 사냥감이 나타났다. 전 같으면 사냥감과의 스릴을 즐겼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두 마리..”

 

작게 속삭였다. 아무리 작은 소리지만 에밋과 재스퍼는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사냥감을 찾아냈다. 어느 덧 내 사냥감의 수는 10마리째에 접어들었다. 갈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에밋은 6마리 재스퍼는 8마리였다. 우린 한번 사냥을 오면, 5마리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3마리면 충분한 나는 어느 덧 5마리를 넘겼다. 11마리째 사냥을 위해 땅을 한번더

박찼다. 그때 칼라일이 내 앞을 막아섰다.

 

“에드워드.. 그만”

 

난 칼라일의 말에 박찼던 발을 멈췄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갈증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갈증이 줄어들지 않았어요..”

 

내 말에 칼라일은 잠시 고민을 했고, 이내 옆으로 자리를 비켜섰다.

 

“고마워요 칼라일..”

 

난 11번째 사냥감에 이빨을 꽂았다. 이미 내기의 승자는 ‘나’로 결정이 났지만 난 사냥을

끝낼 수 없었다. 그렇게 난 23번째 사냥감을 잡았다. 죽어가는 사냥감을 보면서 마음이

쓸쓸했다. 허전한 듯 공허했다.

 

‘큭큭.. 네 갈증에는 인간의 피를 마셔야 해’

 

‘그것’이 재미있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인간의 피..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난 ‘그것’의

소리를 무시했다. 그리고 모두가 모여 있는 들판으로 몸을 돌렸다. 곧 내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내 모습이 나타나자 에밋이 손을 들어 흔들었다.

 

“어이! 에드워드! 네 승리야!”

 

난 에밋을 향해 뛰어갔다. 곧 그의 앞에 멈춰 섰고, 난 에밋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편안했다. 이제 곧 끝난다는 것이 편안했다. 앨리스는 재스퍼의 무릎위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엔 칼라일이 서있었다. 에밋은 곧 로잘리의 옆으로 가 허리에 팔을

둘렀다. 에스미가..생각났다. 난 이 흠잡을 때 없는 ‘가족’을 한참 바라 봤다. 뱀파이어란

점을 빼면 완벽했다. 화목했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물론 돈도 많고, 머리도 좋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가족보다 유대감이 깊고 비밀이 없었다. 난 이 ‘가족’옆에 서서

한참을 미소 지었다.

 

“그래 에드워드! 소원이 무엇인가?”

 

에밋이 장난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씨익’ 웃었다.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고 살짝

삐딱하게 섰다.

 

“일단 집으로 가지? 에밋 할아범?”

 

내 말에 모두 호탕하게 웃었다. 오랜만의 ‘즐거움’이었다. 우린 천천히 들판을 빠져 나왔고

모두 차에 몸을 실었다. 빠르게 운전을 했다. 라디오에선 흥겨운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난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에드워드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봐?”

“흠.. 그런가 봐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 즐거웠다. 기분이 좋았고, 가벼웠다.

 

 

-

 

우린 1층 거실에 모여 있었다. 모두 내 입만을 바라 보았다. ‘소원’을 말하기 위해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소원’은.. 벨라를 만나러 가는 거야”

“엑! 소원이 고작 그거 뿐이야?”

 

에밋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곤 차가운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벨라를 만나러 갈 때.. 함께 가줬으면 해”

“함께 가달라고?”

 

로잘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난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지금 내 상태를 모두 알고 있을 거라.. 믿어 난 곧 ‘각성’이란 걸 하게 될 거야”

 

내 말에 이 완벽한 ‘가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눈을 감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난 위험한 ‘존재’가 될 거야. 그 전에 벨라와 해어져야해”

“에드워드...”

 

내 말에 앨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난 손을 들어 앨리스의 생각을 막았다.

 

“알아 앨리스.. 힘들 거야. 하지만 난 해야만 해.”

“잠깐! 에드워드 그래도 우리가 왜 가야하는 거야?”

 

로잘리가 말했다. 난 로잘리의 눈을 바라봤다.

 

“그때 ‘각성’하게 될지도 몰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벨라를 지켜주고, 난 죽여.....줬음 해”

“말도 안 돼!”

 

로잘리의 목소리가 분노에 찼다.

 

“네가 왜! 벨라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야 하지? 왜? 네가 왜 죽음을 생각 하는 거야?”

“내가 옆에 있으면 벨라가 죽고 말거야”

 

내 말에 로잘리는 분노를 참기 힘든 듯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제발..로잘리 부탁이야..”

 

난 이 완벽한 ‘가족’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부탁할 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