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백업이괴로워하는 걸 보고 내가 함께 괴로워했다고거짓말할 수는 없다. 나는 안도하고 기뻐했다.
미덥지 못한 기계라 할지라도 통제권이 내 손에 있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겼다.
내가 백업보다 케이블에서 먼저 나온 것이다.

너무 많은 소리가 나를 괴롭혔던 것처럼 너무 많은 빛의 영역이 내 집중을 망쳤다. 색깔들이 구별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밝고 어두운 영역들이 수시로 섞여서 분간이 안 됐다.
낮은 채도와 낮은 온도를 분별할 수 없었고, 눈앞에 어룽거리는 것들이 밝은색을 지닌 무언가인지 뜨거운 열을 지닌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다.

오싹했다. 하나의 소리를 다른 소리와 구분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눈 앞의 물체를 규정해줄 인공지능을 부착하지 않고 눈을 뜨느니차라리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게 나았다. 나는눈을 감으려 했지만, 그 또한 방법을 알 수 없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오! 멍텅구리! 이은하! 오, 이은하, 멍텅구리!"
그래...... 야...... 알았어, 이제 그만해."
"이런 멍텅구리! 내가 바다를 건너서 멍텅구리에게 오다! 오! 세상에 제일 멍텅구리!"
"알았어! 그만하라고, 한국어 입출력기? 그거 구해다주면 되는 거지? 젠장.... 내가 해마한테 돈을 투자해야 하는 거야?"
"너의 행동의 속도가 멍텅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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