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작품이 장르에 담기는게 아니라, 장르가 작품에 담긴다. 장르는 바구니가 아니라 해시태그 다.

얼마나 멀리,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는 당신의 몫이다. 물론 나는 SF의 세계로 향하시기를 추천드린다.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이 장르를, 이 세계를, 당신도 함께 사랑해 줬으면 해서다.

그냥 쉽게 생각하자. 마음 편히 SF 이야기를 하나둘 접하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자연스럽게 SF가 무엇인지 알게 될것이다. 당신이 SF를 읽고 보고 플레이하며 ‘아, 대충 이런거구나‘ 하고 떠올리는 그 느낌이 바로 SF다. 데이먼 나이트의 말처럼 "내가 SF라고 부르는 것이 곧 SF"인 것이다.
당신이 SF를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하건,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이라고 생각하건, 누군가는 끔찍이 싫어할단어인 ‘공상과학‘이라고 생각하건 상관없다. 그게 바로 당신의 기준이니까. 각자가 생각하는 SF의 기준이 공명하고 하여 형성되는 모호한 경계, 그것이 바로 오늘의 SF 일 것이다. - P29

"너네들 전부 흥이다! SF 좋은 거 나는 예전부터 다 알았거든?"

더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우리 삶을 직접 대입시킨 국내SF들이 넘치는 지금에 와서는 굳이 SF를 시작하겠다며 계보를 따지며 미제 유물을 숙제처럼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들은 이미 고전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으니까. 물론 고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대상의 재미가 있지만, SF의 본원적인 재미와는 조금 다른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그냥 마음에 드는 최근의 한국 SF부터 읽기를추천드린다.

과연 우리 앞에 놓인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혹은 아포칼립스일까.

물론 SF는 미래를 예언하기 위한 도구는 아니다. 하지만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SF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혹은 제안한다. 가끔은 우리가 마음속 깊이 욕망하고 있던 미래를 형상화하여 눈앞에 보여 주기도한다.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말이다.

우리는 SF를 통해 남녀가 완전히 평등해진 사회를 디자인할 수도 있고, 지구상에 운석이 떨어지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볼 수도 있다. 모두가 영생불멸하는 미래를 상상하거나, 우주의 시작과 끝을 사유해 볼 수도 있다.

SF는 초월에 대한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 준다. 온몸을 기계로 바꾸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거나, 과학의 힘으로영생불멸한다거나, 초능력을 얻어 상대의 마음을 읽고 물체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등 어떤 복잡한 욕망도 실현 가능하다. 초월을 다루는 이야기는 워낙에 인기가 많고 자주 반복된 탓에,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이야기가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당신은 취향껏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유독 한국의 SF 작가들은 남들보다 섬세하고 따스한 사람들인 것같다. 그들은 우리의 사소한 아픔을 놓치지 않고, 약자와 소수자들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적어도 내가 겪은 바로는 그렇다. 작품에서는 작품 바깥에서든 말이다.

왜 SF에 대해서만 이런 호들갑을 떠는 걸까? 미스터리는악의 발생을 탐구하기 위한 사회학적 도구인가? 호러는 공포의 성질과 죽음을 해석하는 수단인가? 로맨스는 사랑의본질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시도인가? 그럴 리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SF에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SF는 인류의 비전을 추구하기 위한 장치도,
윤리와 지성을 논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그건 이 장르에대한 지나친 승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즐겁기 위해 SF를 소비한다. 그럼 왜 안 되는가? 그냥 즐거우면 왜 안 되는가? 나는 일부 SF 팬들의 선민의식에 진절머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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