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가 된다는 것 - 시를 필사하며 누리는 마음 정화의 시간
허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로 알게 된 허연 시인은 정말 소년은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소년의 감성이 채 가시시 않은 생물학적으로도 아직 푸른 나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시가 그랬고 시를 읽는 동안 느껴지는 내 감성이 그랬으므로!

알고 보니 연식이 쫌 있는 분!이었다. 1966년생. 물론, 이건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그 나이를 푸르다하면 푸른 나이가 될 수 있으므로.

그가 시를 필사하며 누리는 마음 정화의 시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내가 시가 된다는 것]의 필사 시집을 엮었다. 나쁜 소년(그는 그의 시집이 이 제목으로 출판하는 걸 반대한다고 이 책에 밝혔다. 내가 소년도 아니고...하면서. 그러나 편집자가 고집해서 정했다는 그 제목은 참 좋다) 그가 우리에게 힘과 위안을 줄 수있는 100편의 시를 가려모아 엮었다고 했다.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기쁘게 그것들이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익히 알려져 있는 유명한 국내외 100편의 시들이 테마별로 실려 있다.가끔 낯선 시가 보이기도 하지만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 보았음직한 시들이 고루 포진해 있다.

필사를 하면 시가 더 깊이 이해되고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라고 빈 칸도 주었다.

지금은 그 기세가 약간 주춤한 듯 싶기도 하지만 아직도 식지 않은 인기 책 중 하나인 컬러링 북이라는 게 있다. 어감에서 알 수 있겠지만 그림을 색칠하는 책이다. 미취학 아동들의 소근육과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는 색칠공부가 아니고 성인용 색칠공부(?)책이다. 색칠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과 스트레스로 점철된 일상의 피로를 힐링한다..뭐 이런 문구를 본 것 같다. 그런데 이 컬러링 북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계속 오르고 있었던 게 몇 달 전 일이다.

 

어디서 본 글인지는 생각은 안나지만 어느 문화부 기자가 쓴 글을 읽은적 있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책을 안 읽었으면 컬러링 북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는지 통탄한다는 내용이었다.

(컬러링 북이라고 단순히 아이들 색칠공부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디테일이 얼마나 정교한지 섣불리 덤볐다간 힘만 빼고 힐링이고 뭐고 스트레스만 더 받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책이 많다. )

애니웨이, 나도 그 기자의 말에 공감한다. 컬러링 북엔 글자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으므로!

 

그런데 이것도 시류인지...요샌 필사책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필사가 글 쓰는 사람들에겐 거쳐가야 할 산 중의 하나이고 필사를 함으로써 눈으로 읽었을 때의 느낄수 없었던 것들을 손 끝에서 마음까지 꾹꾹 느낄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필사가 필요하고 또 중요하기까지 하다. 필사 책은 주로 문인들의 이름을 걸로 많이 나온다. 어떤 시인이 추천한 시, 누구와 함께 써 보는 명문장 이런식으로.

 

나는 좀 속상하다.

시를 잘 쓸 수 있는 시인들이,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이, 이런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해!

어쨌든 이건 자신만의 시집이 아니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저변확대의 차원이라 할지라도) 누구의 시인데 너도 한 번 읽고 써봐라 하는 청유의 메세지가 깔린 다른 사람을 업고 낸 내 책이니까.

이런 책을 엮어 낼 때 빼는 힘으로 자기의 시를 한 편 더 적어 오롯한 그의 시집을 읽고 싶은 게 글 잘쓰는 시인을 사랑하는 독자의 마음이다.

그러면, 이런 책은 누가 내어야 하는가? 그건 내 알바 아니다.

장사가 된다면 출판사에서도 낼 것이고 누군가는 엮게 되어 있을 테니까.

 

시 한 편에 대한 자신의 감상이나 포인트로 삼고 읽으면 좋을 지침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테마로 여러 시를 한꺼번에 묶어 100편을 채웠다는 것도 성의부족처럼 느껴진다.

시를 소개하고 싶으면 이런 시는 이럴때 읽었더니 이런 느낌이더라, 이 시인의 감성이 이런데 이런 점이 참 좋아 배우면 좋겠더라하는 작은 첨부라도 있었으면 덜 속상했을텐데...

 

허연 작가를 너무 좋아해서 기대치가 높았던 것 같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오늘 친구의 연애담을 들었는데 헤어지려는 그 이유가 너무 씁쓸했다. 시를 좀 읽지 않겠니?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너무 현실을 숭배하고 시는 우리에게 밥 한 술 떠먹여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아무말 못했다.

 

한 문장만 읽어도 배 부른 시들이 더러 포진해 있어서 책을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