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집 예찬
김병종 지음, 김남식 사진 / 열림원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시골에 산 사람치고 나무집에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것이다.

온전히 나무로만 집은 기품있는 한옥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부분 부분이 나무로 이어진 집.

내 어릴적 집도 그런 집이었다. 마루가 있고 서까래가 보이고 창호지를 바른 방문이 있는 그런집이었다.


아래채의 작은 방은 나무의 골조 사이사이를 석회를 반죽해 바른 회벽이 칠해진 천장이 드러나는 방이었다.

명절날이나 집안 행사가 있어 도시에 사는 사촌들이 오면 어른들은 본 채에서 일할 때 우리는 주로 아래 채에 오글오글 모여 놀았는데, 어떤 날 친척 오빠가 천장을 쳐다보며  "이 방에 있으면 고래 뱃 속에 갇힌 피노키오가 생각나." 했다.

그때 친척 오빠의 표정과 목소리가 지금도 선한데... 그때는 그말이 "네 집은 참 촌스럽구나." 로 들려 괜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고래의 갈비뼈처럼 둥글게 천장을 감싸 안고 있던 매끄럽지 못하고 옹이진 나무의 울퉁불통하던 뼈대와 그 사이를 하얗게 채운 회벽이 내려보던 유년의 그 작은 방이 사무치게 그리울때가 있다.

좁은 마루를 사이로 후두둑 후두둑 비가 올 때 피어오르던 흙냄새, 문을 열면 수돗가에 심은 포도나무의 싱그러운 잎들, 바람이 문을 덜컹덜컹 흔들어 얼핏얼핏 잠이 깨던 밤, 그럴 때  문 창호지에 비치던 마당의 감나무 가지...

유년이 다 지나기 전 벽돌집으로 변해버렸지만 지금도 내 기억속의 고래 뱃 속 같던 아늑하고 좁은 아래채의 기억은 언제고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다.

몇 년 전 일간지에 올라오던 김병종 화가의 화첩기행을 챙겨 읽어왔는데 그땐 글도 참 잘 쓰는 화가구나 했다.

그림을 잘 모르니 그림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만 글을 읽고 있으면 소개하는 나라와 문화 그 속에 사는 사람의 삶이 궁금해지고 나도 한 번 가봤으면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게하는 유려함이 있어 애독했었다. 그 뒤 화첩기행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책으로 사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신춘문예로도 등단하고 연극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내공만만찮은 교수님이셨다.


[나무 집 예찬]은 김병종 화가가 한옥과 인연을 맺고 새로운 한옥을 짓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다.

새로 지었다기 보다는 헐려는 서울의 한옥을 사서 팔당에 옮겨 온 이야기이다. 나무를 새로 다듬고 새 터에 맞게 리모델링을 했겠지만 짓는 과정 보다는 한옥이 화가의 집이 되기까지 사연과 사람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연과 사람들 사이를 무심히 흐르는 건 한옥이 배경이 되는 고즈늑한 풍경이다. 뉴욕 타임스 객원기자 김남식 작가가 찍었다는데 사진 기술과 멋진 화가의 집이 한데 어우러져 '집이 그림이 되는' 순간 순간들이 이어졌다. 화가 말마따나 '고요한 황홀'이다.

나무의 결을 쓰다듬으며 향기를 느끼며 사는 한옥 안에서의 삶도 황홀이겠지만, 한옥의 배경이 되는 백 년이 넘은 노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 집이라니!

어느 게절 인 들 그렇지 않겠는가 마는, 한 치의 빼꼼한 틈도 없이 노란 빛 융단을 깔아주는 가을 날들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전생에 쌓은 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가 없다. 부럽고 부럽다.  


집을 지어 보니 어떻고, 살아 보니 어떻고, 이건 좋고, 저건 나쁘더라 구구절절 빽빽히 적은 책이 아니라 더 오래 보게 되었다.

나무를 통해 바람을 느끼게 하고 문에 비친 나무 그림자로 운치를 느끼게 하는 여백이 좋았다.

언감생심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겐 그림의 떡일지라도 이어지는 수려한 사진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되었다.

표지의 옹이진 나무결이 살아있는 쪽 마루를 손으로 가만 쓸어 보게 되었다.


나무집에서 태어 났으니 죽을 때도 나무 집에서 죽게 되기를...혼잣말로 되뇌며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