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배에다 술병을 가득 싣고 바다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디서 읽었더라...)

제목의 자산어보가 주리라 여겼던 생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서다.
표지의 배 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고 있는 작가 모습은 흡사 엄청 슬픈 날 의자를 마흔세 번 옮겨 노을을 바라본다는 어린왕자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작가는 어리지 않다. ) 슬픈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나에겐 충분히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자태다.
아, 술 맛 땡기는 풍경인데..싶다.

지금도 화자가 되고 있는 사라호 태풍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팔경호' 이야기나 고래를 보고 싶어하는 작가의 소원이 책 말미에 반복되면서 추석때 케이블로 본 벵골 호랑이와 227일 동안 표류한 소년의 이야기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의 장면들이 연상되기도 했다.
무섭지만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고래가 살고 있는 바다.
작가에게 바다는 영화처럼 환상적이거나 아름답기만 해 보이진 않는다. 바다는 작가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이력이고 지금도 함께 흘러가고 있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동반자의 느낌이다.

'허공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
2005년 함께 인도양을 항해 중이던 안상학 시인의 말에 경도되어 작가가 살고있는 곳의 명확한 정의가 '푸른 물방울' 이었다는걸 
술과 안주를 곁들여 쓴 인생 회고록이자  항해 일지다..

바다와 더불어 산 세월만큼 작가에게 있어 바다는 애증의 대상이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가와 바다 이야기거나 바다와 연관된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 살아있다.
바다를 향한 찬양이나 좋았던 기억만 썼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활어를 건질 때의 생생한 파닥거림이 글에서도 느껴진다.
작가지만 배를 가지고 있는 반쯤은 어부이기도 한 갯바람 섞이고 비린내가 스민 이야기들은 멸치를 안주 삼고도 술술 술이 넘어가는  맛갈난 이야기들이라 내 잔 하나 더 얹어도 괜찮을지 묻고 싶어진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는다.'

그래서인가?
작가의 헝클린 머리와 깊은 눈망울은 흐린날의 파도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닮아있다.
그리고 또 묻는다.
배가 한 척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항해를 하겠는가 라고.

배를 만들고 싶으면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 주어라.
이번에도 생떽쥐베리?
바다에 대한 동경은 내가 심어주었으니 너는 너만의 배로 어떤 항해를 계획하느냐 거꾸로 묻는데...
나는 할 말을 잠시 잃는다.

바다 밑에 수많은 족보의 어류들이 떼로 몰려오고 몰려가고 있으니 술 병 가득 싣고  바람 부는대로 한 번 가본다고 할까?
벵골 호랑이 한 마리 태우고 미어캣이 득실거리는 떠다니는 환상의 섬으로 가보고 싶다고 할까?

술은 비는데 내 술 상위에 올릴 어보는 빈약하기 이를데 없고  밤은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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