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코타로 지음 | 김수현 옮김
민음사 2014.08.01
펑점


 재미있는 책을 만날 때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큼이나 즐겁다.

책은 재밌어야 하고 음식은 맛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밤의 나라 쿠파]는 근래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이다.

장르마다 가지고 있는 기준에 부합해 독자의 취향과 맞아 떨어지면 '재밌다'는 말을 쓰게 되지만, [밤의 나라 쿠파]는 장르가 이건데 이래서 재밌었다 라고 꼬집에 말하기엔 뭔가 다 2% 부족하다.

 

환타지인가 싶다가도 모험 이야기 이고, (책표지에 우화라고 써 놓았지만) 우화라고 생각하기엔 그다지 큰 교훈이 없을 뿐 아니라

숨겨진 비밀을 캐내는 과정엔 긴장과 스릴이 느슨해 조마조마해 지지 않는다.  

심오한 교훈도 없고 놀랄만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의 흐름이 빠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재밌다. 자꾸 손이 가는 새우깡 같다.

읽다 보니 '어, 벌써 끝난거야? 아쉽군. 재밌었는데...'하며 손에 묻은 새우깡 가루를 빨게 되는 기분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은 영화화되어 더 유명해진 [글든 슬럼브]가 되겠지만, 이 양반 일본에서는 꽤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내 놓은 작품마다 좋은 상도 많이 받고 우리나라에도 그의 팬이 많다. 나는 아니다.

재밌게 읽은 책이 몇 권 되긴 하지만 음산하고 피냄새가 많이 나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밝고 향기로운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이 책은 묘하게 재밌다.

음산하지도 않고 피냄새도 안난다.

시골마을 사람들이 오골오골 모여 침입을 받아 위기에 빠진 마을을 어떻게 해 봐야 하는데 어째야 하는지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도 없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위험할 때 마을을 구한다는 삼나무 숲 속 '쿠파의 병사'를 기다리며 옥신각신, 고양이가 사람말을 알아듣고 쥐가 고양이 말을 알아 듣는 중 서로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며 타협과 출구를 모색해 나간다는 줄거리다.

해프닝으로 시작해 해프닝으로 끝났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서 못 놓는 이유는, 삼나무 숲에서 쿠파 괴물과 싸우다가 임무를 완수하면 투명해 진다는 쿠파의 병사들에 대한 궁금증이다.  

존재의 모호성을 띠고 있는 그 신비의 병사들이 언제 나타날 것인지, 진짜 살아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은 삼나무 정령같은 쿠파와 함께 미스테리의 극을 이룬다. 

그들의 실체가 벗겨지는 반전은 허를 찔렸다는 느낌보다 눈채 채고 있었어 정도지만 이 반전이 고양이와 쥐가 말이 통하는 동화적(우화적이라 해야하나?)상황을 노스탤지어가 스민 인간적 세상으로 건너오게 하는 따뜻함이 있어 실망스럽진 않았다.


이사카 고타로의 진면목이 나타는 것은, 교훈 따위를 주려고 쓴 책은 아니야! 라며 술술 써 내려 간 것 같으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대화를 통한 촌철살인의 일침이 있다는 거다.


아내의 바람으로 쿠파의 나라까지 온 평범하고 잘난 구석 하나 없는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승격시키고 고양이 톰은 쥐들과 좀 더 바라직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리고 쿠파를 무찌르고 마을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역시 제일 좋은 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걸 복안 대장은 알고 있다.

 

"전쟁에서 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슨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는 거야."(P.129)

"만약에 누군가의 이름을 대야 한다면 내 이름을 대거라."(P.304)

간 할아범은 누워서 마을의 비상사태를 의논하러 오는 젊은이들에게 주로 이런 말을 하는데, 뾰족한 대책이나 위력을 가진 말은 아니지만 휩쓸리지 않는 중심이 서있다. 생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통찰의 힘이 있다.


굵직한 역할을 담당하는 복안 대장과 원로의 사명을 다하는 간 할아범은 오에 겐자부로의 [동시대 게임]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에서 빌렸다는데 이사카 코타로의 오에 겐자부로를 향한 오마주로도 읽힌다.

오에 겐자부로 같은 문학의 거성을 둔 일본작가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시대 게임]이라... 일단, 위시리스트에 넣어 둔다. 언제 사서 읽을 지는 몰라도 책 속에서 다른 책을 발견하는 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세상의 이야기들이 무겁거나 침울하고 가볍거나 경박하다 못해 무섭거나 소름끼치는 얘기들이라 입맛이 쓸 때, 입 안을 헹구어 주는 이야기가 뭐 없나? 찾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이스크림 슈팅스타를 먹을 때 만큼이나 입 안이 화~ 해진다.

달고 시원할 뿐 아니라 입 안에서 톡톡 들까불며 축제를 연다.

뭐지? 하는 순간 아이스크림은 다 먹어 버리고 페이드 아웃. 여운만 남는다.


톡.톡.톡. 그래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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