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홍시여,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이 문장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으로 유명한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하이쿠라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이쿠라고 생각하지 않고 저명한 누군가가 남긴 어록에 나오는 말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5.7.5 열일곱 자로 삼라만상에 담긴 철학을 한 줄에 엮어내는 촌철살인이 파닥이는 하이쿠!

익히 알려진 몇 편의 하이쿠를 알고는 있었지만 하이쿠 한 줄에 담긴 깊은 삶의 의미와 넓은 철학을 아울러 읽어 볼 기회도 깜냥도 못되었었다.

어떻게 보면 참 쉽게 쓰여진 시 같기도하고 말장난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깨달음을 주는 한 줄이어서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달라지는 기이함을 느끼게 하는 게 하이쿠 이기도 했다.


[한줄도 너무 길다]로 14년 전 하이쿠 모음집을 엮어 펴낸 류시화 시인이 이번에 새로 이 책을 엮어 선 보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에도 시대의 바쇼, 부손, 잇사, 시키에서부터 현대의 하이쿠까지 다 아우르고 있어 하이쿠를 집대성한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0명 시인들의 하이쿠 1370여 편이 실려 있어 450년전의 하이쿠속으로 걸어들어가다 보면 하이쿠의 숲이 얼마나 깊고 향기로운지 폐부까지 느껴져 온다.

하이쿠가 낯선 독자들을 위해 류시화 시인이 직접 하이쿠에 대한 해설을 달아 하이쿠 이면에 숨쉬는 뜻과 배경, 하이쿠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시인의 눈으로 재해석해 하이쿠의 세계로 입문하는데 어렵지않게 길을 열어두었다.


 

열 마디 말을 줄여 한 마디로 말 할 수 있으면 시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라 들은 적이 있다.

시를 독자가 느끼도록 해야지 설명하려 드는 순간 죽은 시라고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이쿠는 가장 시다운 시라고 할 수 있다!

살과 비계는 다 버리고 오롯한 뼈만 발라 꼿꼿이 세워 놓은 시의 정수를 보는 것 같다.

깨달음을 주는 선시 인 듯도 하다가 짧은 촌철살인의 한 문장인 듯도 하다가 열 마디 말을 15글자에 응축시켜 담은 긴 소설같은 느낌도 든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책에 나온 하이쿠를 쭈욱 훑어보면 자연을 노래한 하이쿠가 가장 많아 보이지만, 사랑을 노래하고 마음의 시름을 쏟아놓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하이쿠도 많이 눈에 띈다.

어떤 방향에서 노래 하든 하이쿠는 모두 짧은 화살처럼 날아와  긴 여운을 남기며 가슴에 꽂힌다.

특히, 잇사의 하이쿠는 자신이 처한 가난과 처지를 자연과 사물에 빗댄 문장이 많았는데 읽으면서도 그의 상황과 힘든 삶이 절절이 느껴져 가슴 아팠다.


 간노 다다토모의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같은 하이쿠를 읽으면 나무의 한 생애가 차례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도 함께 오버랩되는 깊이가 있어 하이쿠의 세계가 얼마나 오묘하고 함축적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멋지다!!

책의 구성도 중간중간 펼쳐 보일 수 있는 페이지를 마련해 하이쿠의 운치를 더했다.

책을 읽으면서 접혀 있던 페이지를 펴 보면 멋진 엽서를 받은 기분도 든다.

책의 구성도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불리는 하이쿠지만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소설 한 권 분량이 되는 시도 있음을 알게 된다.

짧은 한 문장을 외워 조용히 읊조리다 보면 시의 파동이 온 몸에 전해져 내면마저 고요해 지는 것 같다.

아직 하이쿠를 몰랐거나 알았으되 좀 더 깊이 알기를 바라는 독자에게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두툼한 책의 두께 만큼이나 읽는 이의 마음이 두터워지고 훈훈해 질 것이라는 건 얘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