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늦복 터졌다 -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가 함께 쓴 사람 사는 이야기
이은영 지음, 김용택 엮음, 박덕성 구술 / 푸른숲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신인 김용택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시인의 어머니나 아내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드물다.

처음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시인의 명성을 등에 업은 그렇고 그런 집안의 신변잡기를 모은 내용은 아닐까? 약간 의심했었다.

읽어보니 아주 아닌건 아니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도 없다.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고 나라를 구하고 역사에 획을 긋는 큰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모든 이야기는 신변잡기 일 수 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우리 삶을 지탱해가고 있고 각자의 삶속에 나름의 철학이 있으니 모든 이야기가 신변잡기라 치부할 수도 없다. 

 

진실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책에서 진솔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고 있다.

김용택 시인을 염두에 두고 읽었으나,(아마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와 그의 아내가 쓴 책이라는 걸 몰랐더라면 손에 잡지도 않았을 이야기라는 건 분명하니까!) 책을 읽다보면 김용택 시인은 fade out 되고 평범한 며느리와 조금 별난 시어머니의 조근조근 주고 받는 이야기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시집 온 날, 첫날밤, 시아버지의 바람기, 몸에 것, 개간, 방직공장, 동네회관, 시집살이...

그 시절 시어머니들이 겪었을 법한 일은 그 시절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다 겪었고, 알 만한 얘기는 우리도 다 안다.

하지만 사투리 육성이 그대로 들릴 듯한, 삶속에서 체득한 적나라한 표현들이 살아있는 회상의 이야기들은 재밌으면서도 끝내는 가슴이 아파옴을 어쩔수 없다.

꿋꿋한 의지로 질곡의 삶을 잘 견뎌 온 우리 할머니를 만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좋기만 한 시어머니고 아니고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도 아니었음을 이은영씨와 박덕성씨는 숨기지 않고 얘기한다.

아마, 이런 어머니의 삶을 구술하고 받아 적어 책을 내는 일이 없었더라면 끝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채로 서운한 마음이 가득한 채로 살았을런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들인 김용택 시인이 다행스럽고 기적인 일이라고 여길 만큼 글을 읽고 쓰면서 어머니의 표정은 빛났고 독립적으로 변해  자존감과 여유를 가진 너그럽고 관용적인 어머니로 변해갔음을 적고 있다.

 

병원에 있는 아픈 시어머니를 일을 시킨다고 투덜대면서도 바느질을 하고 글을 적는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에 사람이 늙는 건 우리 몸의 각 기관이 낡고 기능을 다한 탓도 있지만, 아무것에도 소용이 없어졌다는 무기력에 더 빨리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할 일을 찾아 주는 며느리.

뭔가 할 일이 있다는 즐거워 하는 시어머니.

그들이 화해하고 이해하고 마음속 까지 껴안아 가는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에게도 연로하시고 몸이 편찮으시고 험한 삶을 살아오신 (아직도 살아가고 계시는) 시어머니가 있는데..

나는 무얼했고 무얼 할 계획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닭발을 사 줘서 잘 먹고 나서 늦복 터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며느리가 될 자신은 없다.

닭발만 사 줘서 들 을 수 있는 말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머니도 수를 한 번 놓아보세요,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어 보는 건 어때요? 뜬금없이 물어 보기도 민망스럽다.

 

무얼하면 나도 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준 지금을 늙고 쓸쓸하고 안 아픈 곳이 없는 어머니께 기쁨을 찾아드리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까?

나도 그리 나쁜 며느리로 기억되고 싶진 않은데.....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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