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짧은 글인데도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있는 듯 없는 듯한 어떤 무게 때문에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었는지,
모호한 기대감이었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한 인간,
한 아버지 안에
이렇게 다채로운 모습이 존재하는군요.
그건 시시비비로 따질 수 있는 모습은 아닐 겁니다.
그냥 그 존재.
그 무거움.
또는 가벼움.
결국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존재로움.
아주 막연하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한 비유나 수사 없이
이렇게 의미를 그려낼 수 있는 작가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의 가장 절대적인 미덕은 절제로구나,
삶을 조망하는 능력과 성찰의 깊이가
대체 어느 정도 되어야 이런 경지에 이를까 싶었어요.
선생님은 이 글을 읽고 열 번 우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아니, 울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무엇보다 제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제게는 아버지의 삶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기억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제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친척들에게 전해 들은 것이기에
날것으로서의 기억은 아닙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제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생기더군요.
누군가는 알고 있을 텐데,
그 여자는 알고 있을 텐데,
과연 내가 아버지의 삶의 편린들을 알게 될 날이 올까.
마음 구석구석 캄캄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제 마음 밑바닥을
고요히 흔드는 글이었습니다.
젖은 눈물이 모래처럼 손끝에 바스락거리는
바싹 마른 옛 편지가 오래도록 가슴을 덮어주는 기분이랄까,
그런 느낌이었어요.
덕분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제목인 'La Place'의 의미가
새삼 가슴에 와 닿네요.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저는
과연 어떤 '자리'에서 살아가는 걸까.
나중에 두 아이의 기억속에
아버지의 자리로 남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생기더군요.
감사합니다.
- Y 드림